그룹명/수필 방

두더지 때려잡기 / 고윤자

테오리아2 2022. 8. 1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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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앞에서 한 무리 아이들이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웃통을 벗어 던진 채, 튀어 오르는 두더지를 망치로 내려치고 있다. 벗겨진 머리, 뭉거러진 얼굴로 두더지는 불쑥불쑥 튀어 오른다. 내가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을 때는 두더지 잡기를 간첩 잡기로 비유했었다. 지치지도 않고 튀어 오르는 두더지가 흡사 땅속에 숨어 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내미는 간첩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간첩의 얼굴과 모양을 보지는 못했지만, 두더지같이 혐오스러운 얼굴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잡고 솎아내도 북에서 자꾸만 내려오는 간첩은, 흡사 망치가 쉬는 사이에 튀어 오르는 두더지의 습성을 영락없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리라.

 

형제는 한 나무에 달린 열매이다. 그 나무가 가늘고 휘청거리는 나무일수록 열매는 많았다. 부모는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 하지만 같은 나무에 매달린 처지라도, 열매끼리는 특별한 경우를 당하지 않고서는, 혈육이라는 생각이 그리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 열매는 아버지 엄마가 같고 자라온 환경도 같다. 그런데 겉모양은 모두 비슷한 것 같지만, 성격도 다르고 제품의 우열도 다르다. 햇빛을 많이 받는 위치에서 한껏 누리면서 자랄 수도 있고, 음지에서 가장 먼저 바람을 맞을 수도 있다. 형제가 많은 집은 같은 성향끼리 라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옛날에는 한 부모 밑에서는 모든 것이 공유되어야 한다는 개념이 짙었던 것 같다. 경제가 고성장을 거듭한 지금은 경제력이나 권력, 또는 서로의 필요를 보완해 주는 쪽으로 개념이 형성되어지는 편이다.

 

며칠 전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친정아버지의 땅이 발견되었다. 물론 발견된 땅이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땅값이 워낙 비싼 곳이라 남겨진 식구 모두가 숨을 죽였다.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은 표정들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자기 앞으로 배당되어질 땅값을 계산하느라 칠 형제의 머릿속은 몹시 바쁜 것 같았다. 전연 물질에 관심이 없는 듯, 해탈한 승려 같은 얼굴 속에 숨어, 누구라도 먼저 입을 떼는 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형제 중에 제일 높은 사회적 위치에 있고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큰동생이 입을 열었다. 나누지 말고 힘들게 살고 있는 막냇동생에게 돈을 몰아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는데도, 모두가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앞 다투어 찬성을 한다 권력과 햇볕을 향한 쪽으로 라인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웃는 얼굴 속에 각자의 욕망을 숨기고, 몹시 당연하다는 듯,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듯, 위선적인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나도 다른 형제들처럼 더 큰 소리로 찬성의 말을 보탰다.

 

돌아오는 기차 속에서는 별안간 돈이 쓰일 곳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만일 그 돈이 있었더라면. 갑자기 건물 외벽의 타일이 낡아서 이곳저곳 이빨 빠진 노인네처럼 허름해 보이는 낡은 우리 집이 생각났다. 재건축을 기다리는 쓰러져가는 건물에, 무엇 때문에 쓸데없는 돈을 들이겠느냐며,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하던 일이 떠올랐다. 누가 보아도 돈이 없어 외벽을 못 고치는 사실이 눈에 보이는데 한 번만 슬쩍 훑어보아도 금세 눈치 챌 수 있는 뻔한 사실을 재건축할 집에 굳이 왜 쓸데없는 돈을 들이겠냐며 자존심을 세우던 나다.

 

십 년이 넘도록 타고 다니는 소형차가 기름값이 비싼 요즘은 너무 경제적이라며, 아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변명을 늘어놓던 일도 생각난다. 대구 정도의 추위에 무슨 밍크코트나며, 스포츠센터까지 떨쳐입고 다니는 다른 여자들을 시샘하며 비웃던 내가 오늘은 더욱 초라해 보인다.

 

아직도 오락실 앞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그치지 않고 있다. 사막에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진 뭉칫돈의 유혹은 누르면 누를수록, 내가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강력한 크기로 나에게 달려든다. 암흑을 틈타 몸을 감추고 내려오는 검은 간첩처럼, 완전히 잠가버리지 못한 내 허약한 마음속으로 점령군이 되어 막무가내로 침범해 온다.

 

두더지는 어떻게 튀어 오르는 것일까. 두더지가 얼굴을 내밀 때마다 커다란 압력이 머리 위로 가해지고, 주저앉아야 할 두더지는 탄력을 받아 누르기 전보다 더 많이 튀어 오른다. 세게 누르면 누를수록 더 높이 튀어 오르는 두더지 원리가,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포기해버린 나에게 더 큰 펀치를 날린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한 거액의 돈뭉치가, 흡사 나의 얄팍한 마음을 비웃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오락실 앞에서는 또 다른 무리의 아이들이, 튀어 오르는 두더지를 향해 망치를 내려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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