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가져가셨습니다
고 윤 자
옛날 어느 산골 외딴집에 어머니와 오누이가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날도 산 너머 잔칫집에 일을 하러 갔습니다. “집 잘 보고 있으면 엄마가 돌아올 때 떡 많이 가져다줄게.” 이런 말을 남기고 어머니는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오누이들의 인사를 들으며 어머니는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갔습니다.
…… 신은 우리에게 세상에 태어나겠느냐고 물은 적도 없었고, 자기 앞에 펼쳐지는 인생에 대한 선택권도 주지 않았다. 단지 부모의 몸을 빌려 첫 호흡을 하면서 인생에 대한 몽매한 애착만 부여받았을 뿐이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의 말씀에 순종하는 정말 착한 딸이었다. 나는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면 시집도 잘 가고 순탄한 미래가 보장되리라 기대하며 살았다. ……
저녁 무렵 일을 마친 어머니는 한 광주리 가득 떡을 머리에 이고, 부지런히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고개를 올랐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집채만 한 호랑이 한 마리가 고갯마루에 떡 버티고 있는 게 아닙니까. 호랑이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협박을 했습니다.
“떡 하나만 주면 안 잡아먹지.”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호랑이에게 떡을 던져 주었습니다.
“옛다. 먹고 저리 가거라.”
…… 누구라도 그러듯이 나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전부를 쏟아 부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어느새 독립할 나이가 되었다. 남편은 사회적으로 기반을 잡을수록 점점 더 큰 원 주위를 그리며 밖으로만 돌았다. 마음을 맡겨두고 온기를 받았던 내 둥지는 빈 껍질만 남았다. 그들에게로 향하던 나의 사랑은 목표를 잃었다. 외눈박이물고기처럼 주위를 살피지 않던 나의 정성과 사랑은, 그 형체를 제대로 확인할 사이도 없이 기화되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결과물은 만져지지도 않았고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누구도 그런 종류의 준비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를 너무나 피로하게 했던 것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곤두박질치기를 되풀이하는 상실감이었다. 서핑 선수도 아니고, 감정의 파도타기는 나를 너무나 지치게 만들었다. 누가 내 것인 줄만 알았던 떡을 묻지도 않고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다. ……
어머니는 호랑이를 뒤로하고 빠른 걸음으로 헐레벌떡 두 번째 고개를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호랑이는 더 빠른 걸음으로 고개를 넘어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떡 하나만 주면 안 잡아먹지.”
호랑이는 아까 어머니가 떡을 준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 더 큰 소리로 으르렁거렸습니다.
“옛다. 먹고 저리 가거라.”
…… 젊음으로 눈부셨던 탱탱한 피부와 삼단 같던 검은 머리도 걷어갔다. 나에게 던져진 것은 빛을 빼앗겨 그늘진 얼굴과 쪼그라져 버린 자존심뿐이었다. 우중충한 흰 머리는 앞으로 다가오는 나머지의 삶이 비굴하고 힘이 없을 것임을 미리 예고해 주는 것이었다. 주름살의 후유증은 완만하고 길게 다가왔다. 자신감을 잃은 나는, 누구의 사랑이라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손사래 치며 그러지 말아 달라고 하는 나에게 신의 요구는 도를 넘었다. 살아오는 동안 남의 것을 탐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설마 동반자조차도 데려가 버리는 일이 나에게 생길 줄이야. 나의 허락은 없어도 좋았다. ……
어머니는 남매가 기다리는 집으로 세 번째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호랑이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전혀 무시하면서 고개를 넘어갈 때마다 조금씩 어머니의 생명을 조여 갑니다.
“떡 하나만 주면 안 잡아먹지.”
그래도 어머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호랑이의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또 남은 떡 몇 덩이를 던져줍니다.
“옛다. 먹고 저리 가거라.”
…… 이번에는 나의 여성성을 내놓으라고 강요했다. 몹시 당황스러웠다. 천하디천하고 거추장스럽게만 느끼던 달거리였다. 마지막 숨이 걷혀가는 것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기에, 슬펐지만 던져 줄 수밖에 없었다. 사회는 내게 주변을 정리하며 조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정물 같은 늙은이이기를 원했다. 잠자고 밥 먹는 시간을 뺀 ‘7만 시간의 공포’라고 부르는 시간 속으로 던져진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손자 손녀의 사랑이나 고아원, 양로원의 보편적인 인류애를 논할 수밖에 없는, 범위가 정해진 사랑만이 허용된다는 것을 안다. 너무 넓고도, 나를 가두는 좁은 한계 속에 갇히게 되었다.……
어머니는 얼마 남지 않은 떡 광주리를 머리에 이었습니다. 더 잰걸음으로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 가까이 오고 있었습니다. 눈곱만치의 염치도 없이 호랑이는 어머니의 뒷덜미를 또다시 덥석 잡았습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이번에는 광주리 째 던져 주고 걸음아 날 살리라며 필사적으로 내뺍니다. 하지만 가엾은 어머니는 끝내 호랑이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 이제는 더 줄 것도, 빼앗길 것도 없다. 더 이상의 포기를 요구하는 호랑이를 탓할 시간도 없다. 어머니는 먼 일이라고 느끼면서도 언젠가는 이런 일이 닥칠 수도 있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렇지만 호랑이에게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은 나 아닌 남이어야 하고, 그것이 이렇게 빨리 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욕심 사나운 호랑이는 어머니에게서 받아먹은 떡은 개의치 않는다.
돌이켜 보면, 닥쳐오는 상황이 어떤 존재에게는 고통이 되었고 어떤 존재에게는 즐거움이 되었다. 같은 상황이 어떤 존재에게는 죽음을 초래하고 어떤 존재에게는 삶을 보장하는 것이 우주의 원리인 것이다. 다만 그 결과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다.
살면서 겪어 온 온갖 고통이 생각난다. 과거의 죽어버린 고통과 현재의 살고 있는 고통을 용광로에 넣었다. 고장 난 물건, 잘 알지 못하는 물건, 공연히 붙들고 고생하던 물건들을 용광로에 털어 넣었다. 무쇠를 녹여서 이제는 금을 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용광로에서 모든 것을 재생산하려고 마음먹었는데…… 허지만 너무 늦었다.
신은 용광로의 불을 꺼 버렸습니다.
‘자, 이제 다 가져가셨습니다.’
* 이 수필은 동화적 발상과 구성면에서 특히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