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은 어둡다. 물안개마저 피어올라 뭍과 늪의 경계가 모호하다. 다만 불쑥불쑥 솟아있는 갈대 군락이 늪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변의 경계를 뭉개는 안개를 헤치며 작은 고무보트 한 대가 늪지로 들어선다. 이런 정적 속에서는 새들도 침묵하는 모양이다. 고무보트는 갈대숲을 벗어나 늪 가운데로 나아간다. 보트에 타고 있던 악어 생태 연구원 하나가 뒤를 돌아보다가 나지막한 탄성을 지른다. 그들이 거쳐 온 갈대들 사이로 형광 빛을 띤 녹색의 눈들이 번쩍인다. 악어들이다.
악어들은 미동도 없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마치 태고로부터 그곳에 그대로 있었던 것처럼 적요를 자아낸다. 그 절대의 침묵이 시간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다. 시간의 태엽은 연구원들이 포획화살을 준비하고 어둠 속의 악어를 조준해 날릴 동안 어쩌면 억겁의 시간을 감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주둥이에 올가미가 걸리고 눈이 가려진 채 뭍으로 끌어올려진 악어는 마치 화석 같다. 네 명의 건장한 연구원들이 올라타고 올가미를 풀자 악어가 고개를 뒤로 홱 젖히며 입을 쩍 벌린다. 큰 이빨이 듬성듬성 박혀있는 입 속으로 어둠이 빨려 들어간다. 악어는 곧장이라도 텔레비전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젊은 시절부터 나는 곧잘 가위에 눌리곤 했다. 시도 때도 없이 피곤했는데, 그러면 어디든 자리를 펴고 누워야만 했다. 그러면서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선잠에 들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늘 형체가 모호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꿈을 꾸었다. 꿈이라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감각이 너무 선명해서 꿈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 꿈에 다른 사람이 나타나는 법은 없었다. 오직 나 혼자 어디에선가 나를 지켜보는 시선을 의식했다. 그럴 때면 나는 손 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끙끙 댔다. 누군가가 내 위에 올라타서 손발을 누르거나, 한없이 무거운 이불에 짓눌려 땅 속 깊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무섭고 고통스러워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젖혔다. 그러면 돌연히 꿈에서 깨어나곤 했는데, 깨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어있고 이부자리도 축축한 것이 마치 내가 늪 한가운데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악어는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뭍으로 올라가는 경우를 빼면 대부분의 시간은 늪에 몸을 담그고 살아간다. 섭씨 25도에서 35도 사이의 체온을 유지하는 악어에게 햇볕을 쬐기 위해 언제라도 뭍으로 올라갈 수 있는 늪은 천혜의 서식지이다. 주로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악어이기에 물 또한 체온을 식히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악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늘 늪처럼 축축한 서식지가 필요하다.
나는 눈물이 많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실컷 울고 나도 내 마음은 물에 푹 젖은 늪처럼 축축하기만 했다. 아무리 울어도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어린 나이에도 감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문제란 지독한 가난이었다. 밥을 먹은 사람이 탄수화물이라는 영양소를 얻듯이 가난을 먹은 나는 최종적으로 슬픔을 얻었다. 슬픔은 차곡차곡 쌓여서 내 목울대 아래에서 찰랑거렸다. 누구라도 살짝 건드리면 눈물이 묻어나고, 거친 발자국이라도 남기면 내 늪지에는 물웅덩이가 생겼다. 아마 그곳에서 나의 작은 악어가 자라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작은 악어는 나의 슬픔을 먹고 자랐다.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운동장을 가로지를 때 들리는 수업 종소리에서, 오랜 병고 끝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언 땅에 누이고 흙을 뿌리는 내 손등에 떨어지는 싸락눈에서, 먼 이국땅으로 떠나야만 했던 동생의 헤진 소맷부리를 바라보던 순간 뽀얗게 흐려진 세상에서 슬픔은 봇물처럼 내 늪지로 몰려들었다. 악어는 점점 몸집을 불렸다.
악어는 치악력이 엄청나다. 물속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가 늪가에 얼쩡거리는 물소의 다리를 물고 순식간에 늪지로 끌어들인다. 슬픔의 늪가를 서성거리던 나도 나의 악어에게 물리곤 했다. 나는 저항할 틈도 없이 슬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악어는 물소를 물고 ‘데스 롤링’이라 불리는 돌아치기를 반복한다. 늪이 뒤집어지고 물소는 익사한다. 이제 악어는 물소의 부분 부분을 잘라 통째로 삼킨다. 나의 악어도 내 내면의 어느 한 부분을 잘라먹고 나서야 나를 놓아주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안에서 악어를 키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슬픔을 빨아들였다. 봄에 피는 꽃도 슬프고, 가을에 지는 낙엽도 슬펐다. 내 안의 늪지는 더욱 넓어졌다. 슬픔은 역설적이게도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감정이 되었다. 그 익숙한 슬픔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졌다. 비록 고통을 주지만 악어만큼 나를 이해해주는 존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나의 악어와 눈빛이 부딪쳤는지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감당할 수 없게 커진 고통 탓일 수도 있고, 내 아이들의 눈물 때문일 수도 있고, 조금씩 절대적인 가난이 가시기 시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어느 날 나는 아득하고 검은 광기로 눅눅한 악어의 눈을 마주보았다. 심장이 뜯기는 것 같은 통증과 함께 나는 뜬 눈으로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늪가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나를 보았다.
무언가를 보고 나면 무언가가 달라진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뭍으로 올라가 햇빛을 쐬고 바람을 맞았다. 나의 악어가 사무치게 그리운 날도 있었지만 늪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주 조금씩 늪지가 줄어들었다. 악어는 일 년 동안 먹이를 먹지 않아도 살아남는다. 잊을만해졌다 싶으면 악어는 다시 입을 벌렸다. 그러나 나도 예전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늪지가 뒤집어지고 혼탁한 물결이 일었다. 그리고 이미 존재를 들켜버린 악어도 예전 같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바람이 소슬한 오늘 같은 날이면 나는 짐짓 내 안의 악어를 불러본다. 이제 몸집이 줄어든 악어가 슬그머니 방향을 돌려 꼬리를 보인다. 튼실하고 긴 꼬리를 휘면서 악어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행여 상처를 입을까 철갑 같은 비늘로 온몸을 빈틈없이 감싼, 나의 슬픈 악어가 이제 점점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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