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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잃어버린 풍금소리

테오리아2 2013. 1. 1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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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풍금소리                                         

                                                                                                                     김 계 식 (해오름)

 

명절차례를 지내고 부모님 제사를 위해 일년에 몇 번 고향을 다녀오곤 한다. 들판을 양편으로 갈라놓은 듯 쭉 뻗어 있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차들이 신나게 달리는 광경이 보인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꼬불꼬불 굽은 도로에 뾰족한 돌이 발부리에 채여 걸어 다니기에도 힘이 들었었다. 가끔 나무를 가득 실은 트럭이 지나갈 때는 먼지가 연기처럼 피어 올라 단번에 얼굴을 노랗게 물들이곤 했었지만, 하교 길에 빈 트럭이라도 만날 때는 그래도 운이 좋은 날 이었다. 사고를 저어한 운전사의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 많은 먼지를 마시며 차량 꽁무니에 대롱대롱 매 달려가던 장면을 연상해 보면 지금도 아찔하여 현기증이 난다. 그 스릴 있었던 곡예가 지금 편안하게 승용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위험을 무릅 쓰고 내닫던 동심에 잔잔한 연민을 느껴 가슴이 져 며 온다.

 

 읍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고향마을이 가까워 올 즈음에 초라하게 서 있는 건물 몇 동이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건물의 중앙에 “고시원”이란 퇴색된 간판이 붙어 있다. 그 고장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면 누구나 가슴 한 곳이 허전함을 느끼게 하는 폐교된 초등학교이다. 나의 꿈이 자라던 곳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먹을 것이 없어 살아가기가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지금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기아 현상을 보면서, 우리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던 가난 때문에 얼마나 처절한 삶을 살아 왔었는가를 새삼스레 느낀다. 그래도 집집마다 자식들만은 부자였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사립문에 금줄이 처져 있었다. 우리 집에 또 하나의 동생이 태어났음을 알리는 표시였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 얼마나 큰 경사인가. 그럼에도 어머니께서는 식구들의 밥숟가락 크기가 작아져야 한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안 낳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란다. 급기야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산아제한을 권유하기에 이르렀다. 생명의 신비를 창조하는 신의 거룩한 섭리까지 거역하도록 했었던 것이다. 그 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농촌에는 아기 울음소리를 들어 볼 수가 없었다. 언제는 아이들 때문에 밥숟가락이 작아져 가는 것을 걱정하더니 지금은 인구 감소로 국력이 약해진다며 다산을 권유하고 있으니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농촌 학교가 문을 닫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점점 쇠퇴화 되어 가는 내 고향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고향에 갈 때마다 운동장에 차를 세우고 그 먼 옛날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추억에 잠기곤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들의 발자국 수만큼이나 질퍽한 동심으로 가득 채워졌던 조그만 운동장에는 세월의 흐름을 비켜 갈 수는 없었던 것일까. 우리들의 흔적은 간곳이 없고 오랜 풍상에 패이고 황폐화되어 무성한 잡초만이 교문 입구에서부터 나를 맞이하곤 한다. 그때는 그렇게도 넓었던 운동장이 지금은 어느 부잣집 앞마당만큼이나 좁아 보인다. 이 운동장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이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 운동회가 열리는 날은 우리에게 큰 잔치였다.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익어가는 가을의 한 자락을 잡고 사랑하는 아들딸들과 하루를 즐겼던 것이다. 또 운동회가 끝날 즈음에는 술에 취한 사람들끼리 피투성이가 되도록 주먹다툼이 벌어져서 두고두고 그 지역의 뉴스거리가 되었다. 이런 추억들이 상기도 마음에 남아 있어 아스라이 저려 오는 그리움으로 몸부림치게 한다.

 

이 지역 사람들의 꿈을 심어 주었던 어머니 같은 모교(母校), 그 아담하고 정숙했었던 어머니의 모습은 잡초 속에 묻혀 이름마저 잃어버리고 주름진 할머니로 변해버렸다. 그 초라한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애틋한 감정이 눈물 되어 양 볼을 적셔 온다. 언제까지나 굳게 닫혀 있을 것 같은 저 창문이 금방이라도 활짝 열리고 나를 그토록 아껴 주셨던 천사같이 예뻤던 C여선생님의 미소를 타고 한가락 풍금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긴 세월의 벽을 뛰어 넘어온 환청처럼....................

 

노래를 잘 불러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던 어린 소년은 이제 흰 머리카락을 머리에 이고 저물어 가는 교정에서 깊은 상념에 잠긴다. 더욱더 풍금소리가 듣고 싶은 향수에 젖어든다. 교정 한편에 멋대로 자라 하늘을 찌를 듯이 키다리가 되어버린 프라타나스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슬프다. 어쩌면 저 새 소리는 잃어버린 풍금소리인지도 모른다.

 

끝없이 이어져야 할 후배들의 대가 끊어진 교정에서 마음의 한구석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허전함에 발길이 무겁다. 먼 훗날 동네마다 아기 울음소리가 다시 들리는 날 잃어버린 풍금소리도 온 교정에 메아리치겠지.

눈물로 붙잡는 정든 친구들의 따뜻한  손길을 간신히 뿌리치며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차에 오른다

출처 : 청람수필
글쓴이 : 해오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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