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주기도문, 빌어먹을 -박남철
주기도문, 빌어먹을
박남철
지금 하늘에 계신다 해도
도와 주시지 않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의 나라를 우리 섣불리 믿을 수 없사오며
아버지의 하늘에서 이룬 뜻은 아버지 하늘의 것이고
땅에서 못 이룬 뜻은 우리들 땅의 것임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 보시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고통을 더욱 많이 내려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미움 주는 자들을 더더욱 미워하듯이
우리의 더더욱 미워하는 죄를 더, 더더욱 미워하여 주시고
제발 이 모든 우리의 얼어 죽을 사랑을 함부로 평론치 마시고
다만 우리를 언제까지고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둬, 두시겠습니까?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이제 아버지의 것이
아니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 보시오)
밤낮없이 주무시고만 계시는
아버지시여
아멘
<지상의 인간> 문학과 지성사.1984
어제, 핸드폰 문자로 그의 부고 소식을 받았다. 부친상이거나 모친상이 대부분인데, 본인상이란다. 그에 관해서라면 참 오래 여러 말들을 들었다. 죽음은 입이 커서 모든 생전의 죄목까지도 거두어 가지만, 더러는 금세 그렇게 되지는 않는 사람도 있긴 한 모양이다. 어쨌거나 남에게 상처를 준 만큼이나 본인이 스스로에게 새겼을 상처들을 생각하면 그만이 아니라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들이 불쌍하고 안스럽기만 하다. 당사자가 없는 죽음 앞에서 무슨 생전을 논할 것인가. 그저 더는 상처와는 만나지 말기를 바랄밖에. 그의 후생까지도.
그의 시는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포스트모던의 전위에 서 있기도 했고, 시적 관습이랄 모든 것들과 늘 전투적이었으며 극단이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늘 주목을 받은 복된 시인이었다. 단 한 번도 그를 마주친 적은 없지만, 몇 번은 지근거리를 스쳐 지났을지도 모르는 사람, 욕과 연민을 야누스처럼 두 얼굴로 간직했던 사람.
위 시는 패러디 시의 전형으로 포스트모던을 논하는 자리에선 본보기 삼는 시에 해당한다. 종교를 비롯한 사회 통념을 비웃던 그가 꿈꾸던 시는 무엇이었을까. 이런저런 이유로 애써 외면한 탓에 그의 전체를 다 알진 못하지만, 대개의 포스트모던이 그러하듯 그 역시 고형화된 전형성의 타파나 지리멸렬한 현실에 던지는 야유로써, 좀 더 덧붙이자면 고매한 인간의 구린 쪽을 까발리던 고발자처럼 스스로 그러고자 몸부림쳤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죽음을 말하는 일이 왜 이리 서글플까. 그의 일그러진 생애가 얼비쳐서 그럴까. 다행히도 나는 누구를 욕할만큼 깨끗하지 않아서 사인도 모르는 그의 죽음이 그냥 꺼림찍하기만 하다. 좀 더 살아서 늙은 뒤에 손가락질도 원없이 받고, 욕을 먹어 귀에 딱지도 좀 앉은 뒤에나 저쪽을 넘보지 않고..... 기왕 이렇게 된 일, 죽음이 아주 막장의 일은 아닌 듯 하니까(정말 막장은 살아있는 동안 아닌가 말이다), 조금의 명복을 빌고, 남은 나머진 이렇게 마무리 하자. 에라만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