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지우개
흔적 지우개
김근혜
살아온 흔적을 지우개로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프고, 슬프고, 모나고, 잘못된 것은 모두 지워버리겠지요. 좋은 기억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가슴에 아픔 몇 자락은 다 숨기고 살지 않을까요. 구태여 곱씹을 필요는 없지만, 느닷없이 튀어나와서 가슴을 아련하게 하는 슬픔도 있습니다.
동창회에서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서 많은 변화를 느낍니다. 그들의 살아온 흔적이 자꾸 지워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만날 때마다 점점 달라집니다. 동화책에서 읽었던 신비한 샘물을 마시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점점 젊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아기가 되는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도 됩니다.
얼굴은 자신의 살아온 모습이 담겨 있는 그릇입니다.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서 모양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둥글둥글 살아온 사람은 보름달을 닮았습니다. 푸근하고 덕스러워 보입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금복주 같습니다. 누가 봐도 심술이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곱게 살아온 사람의 얼굴엔 그늘이 없습니다. 참 잘 살아온 얼굴이지요. 반면에 풍상을 겪은 사람의 모습은 누가 봐도 고생의 이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흔적을 지우는 지우개가 생긴 후부터 얼굴만 봐서는 살아온 모습이 가늠되지 않습니다. 좋은 세상에 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형편이 여의치 못한 사람은 어디에서나 표가 납니다. 살아온 흔적마저 말끔히 지워주는 지우개는 대단한 힘을 지닌 게 분명합니다. 혹시 저승의 명부까지 지워주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거울 보는 것이 두려워집니다. 남성보다도 여성이 더 그렇지 않을까요. 아름답고 싶은 것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바람이지요. 거울을 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낯설어서 대하기 싫은 게지요. 가끔 물어보곤 한답니다. 정녕 내가 맞느냐고.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질문을 던집니다. 늙어간다는 것을 잠시라도 부인하고 싶은 게지요.
두 볼도 푹 꺼져서 보는 사람마다 살이 빠졌다고 입을 댑니다. 그 사람들도 왜 모르겠습니까. 나이가 들면 볼살이 빠지고 배만 나온다는 사실을요. 여성이 제일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예뻐졌다’와 ‘살이 빠졌다’이지요. 그런 심리를 이용해서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지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꾸 늙는다는 소리로 들려 서글퍼집니다.
더 젊어 보이고, 예뻐 보이고 싶은 것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욕망이지요. 1980년대 중국을 풍미했던 최고 여배우인 류 샤오칭이 좋은 예입니다. 우리나라 나이로 64세이지만 의술을 이용해서 30대로 깜짝 변신했습니다. 신기할 따름입니다. 삶의 흔적을 지워서 이삼십 년은 젊어진 사람들을 보면 지우개를 사용하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통장을 확인해봅니다. 빨간불이 깜빡입니다. 영혼을 비추라는 경고등 같습니다.
마음은 소녀인데 거울에 비친 모습은 초로입니다. 몸은 뭐가 그리 급한지 마음과는 다르게 엇박자입니다. 늙는다는 건 슬픈 일이지요. 얼굴에서 제일 먼저 드러나니까요. 얼굴은 내면에 감춰 두었던 것을 증거라도 들이대듯이 고스란히 비춰줍니다. 사각형으로 점점 변하는 내 얼굴을 보며 살면서 모났던 부분을 보는 것 같습니다. 나이 먹어서 보는 거울은 속을 비추는 것 같아 뜨끔합니다. 거울은 겉치레보다는 내적인 허영심을 성형하고 나이테를 잘 새기라는 충고도 잊지 않습니다. 잘 늙기 위해서는 자신을 디자인하는 일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싶은데 지워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새록새록 떠오르는 생채기란 놈입니다. 아픔도 가끔은 외로움을 타서 같이 지내고 싶은가 봅니다. 가장 먼저 지우고 싶었던 것이 제일 먼저 달려 나옵니다. 견디기 어려운 아픔이면서 갈무리하고 싶은 것이지요.
바로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입니다. 잠시 떨어져 있는 것은 언젠가는 볼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견뎌냅니다.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죠. 강도를 등급으로 매긴다면 견딜만한 것입니다. 설렘과 기대도 동반하니까요. 영영 볼 수 없는 가족과의 이별은 떠나보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흔적의 지우개가 이럴 땐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게 슬픕니다. 가슴에 묻은 아픔이라 지워지지 않나 봅니다. 보이지 않고 숨어 있는 것이 더 아픈 것인지도 모릅니다.
<영남문학 2013. 겨울호 발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