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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심기-고윤자

테오리아2 2013. 1. 18.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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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심기 <고윤자>



들이나 물속 물가를 가리지 않는 꽃이 있다. 흔히 들풀이라고도 하고 들꽃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자라며 어떤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정원식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의 손으로 개량작업을 통해 만들어져 오는 동안 야생화는 홀로 자라고 홀로 개척해 온 역사가 있다. 정원이나 화단에서 보호받는 식물은 독립이 어렵다. 야생 상태에 버려지면 홀로 자라기가 힘들다. 최근에는 사람들이 야생화를 정원이나 식물원에 옮겨심기도 하여 정원식물과 야생화의 구별이 힘들게 되었지만.

모든 식물은 옮겨심기가 가능하다. 어떤 식물을 옮겨심기 하느냐는 어느 것이 작물을 재배하는데 유리한가에 따라 결정이 된다. 작물 중에는 벼. 배추. 상추. 대파같이 옮겨심기를 하면 수확량이 늘어나는 것도 있고 무우 .당근처럼 옮겨심기를 하면 잔뿌리만 생겨 양질의 목적물을 수확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목적물을 수확할 수 없으면 옮겨심기를 하지 않아야 된다.

노인은 딸네 집에 몸을 맡기러 왔다. 팔십하고도 반을 넘겼다. 머리는 은색으로 반짝이고 고이 간직하고 싶었던 아름다운 턱 선마저 뭉그러져버렸다. 탄력을 잃은 손등위의 혈관들은 지렁이처럼 꿈틀거린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나고 서서 일할 수 있는 시간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해득실을 따지기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이다. 인터넷 세대에게 공자의 말씀은 전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그나마 출근하고 난 후 아이라도 돌봐주고 주방의 설거지라도 쳐 낼 수 있었을 때는 그래도 좋았다. 그때는 지금 보다는 눈길도 따스했었고 필요한 존재이었음을 느껴지게 했다. 차려놓은 밥상에서 밥을 받고, 속옷조차도 주물러 내놓지 못하는 요즘에는 더욱 눈길이 차갑고 귀찮아하는 것이 느껴진다.

ꡐ어디 좀 가실 데가 없느냐ꡑ는 며느리의 말이 있었지만 그냥 귀가 어두워 못들은 것으로 넘겨버렸다. 대답대신 열심히 재봉틀만 돌렸다. 아무도 입어 주지 않는 옷이지만 사랑을 쏟아본다. 이리저리 거처를 옮겨 다니는 것은 며느리의 눈총을 참는 것보다 더 내키지 않는 일이다. 여러 번 노골적으로 노인의 등을 떠밀었다. 장남만 아들이고 일곱이나 되는 다른 자식은 자식이 아니냐고 귀에 바짝 대고 소리친다.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보다는 며느리를 이해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려본다. 집에 들어오면 죽음을 앞둔 허연 노인이 장승처럼 버티고 있으니 왜 마음 한 구석 어두운 짐이 되지 않겠는가. 홀가분하게 살아보고도 싶겠지. 모든 것을 이해하지만 자기 몸을 부지하고 있는 거처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은 이제는 싫다. 친구들의 훈수도 있었고 본인의 자존심도 용납지 않는다. 어디 간들 보탬이 되지 못하는 노인을 그리 반겨 줄 사람이 있겠는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가사에 도움이 되지도 못하는 자신이기에 앉은 자리를 사수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안다. 과거 유목민이 그랬듯이 요즘에는 한 곳에 뿌리박고 살기를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있다고 한다. 노인은 노마드를 두려워한다.
누구나 안정된 조직에서 안정된 생활을 원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 혼자되는 것을 선택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찾아온다.

그냥 무시하고 넘기기에는 며느리의 눈총이 도를 넘친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딸네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잠시 동안 딸과 어미는 서로 반가워한다. 며느리와 자식들의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서로의 아픈 부분은 잠시 동안 비껴간다. 혼자는 서로 외로웠기에 모처럼 둘이 되는 것이 행복하다.

둘의 화목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딸은 오랫동안 자기팔 자기가 흔들고 사는 맛을 보아왔다. 고집스런 머리 속에는 타협이란 단어는 흔적마저 지워져 버렸다. 특별히 자립심이 강해서가 아니다. 누구도 돌보아 주지 않는 환경이 그를 바람과 무관심에 강한 갈대로 키워 온 것이다.

딸의 집 역시 노인에겐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다. 딸은 온순한 편인데 그리 성격이 살갑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못하다. 세상일이 뜻대로 안되는 것을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린다. 자기는 잘 하고 있는데 본인의 성의를 너무 몰라준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강한 자에게 더 약해서 자기같이 착한 사람들을 울린다고 주장한다. 고약하게도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오래된 화풀이를 어머니에게 풀어낸다. 남편 잃고 혼자 사는 설음까지 모두 노인의 탓인 양 한풀이를 해댄다. 불안한 몇 달이 지났다. 친어머니라 스스럼이 없어서인지 딸은 마음놓고 노인에게 달려든다. 노인은 딸이 패악스런 말을 해댈 때마다 열심히 재봉틀을 돌린다. 퍼부어 대는 딸의 말이 아프지만 더 이상 옮겨 다닐 수는 없다고 마음을 다진다.

흙이 오래 되어 거름이 없거나 토양이 산성으로 변했을 때는 다른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또 분에 비해 포기가 너무 자라버리면 분갈이를 해 주어야 한다. 분갈이를 할 때에는 식물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은 음지식물이고 어떤 것은 양지식물이다. 물을 좋아하는 식물도 있고 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식물도 있다. 또 비슷한 환경을 좋아하는 식물끼리 심어 놓아야 한다. 뿌리가 병이 들거나 나무 전체가 죽어 버릴 수도 있다.

삼베로 지은 상복을 입은 여인네들, 건을 쓰고 팔에 삼베 헝겊을 두른 남정네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큰소리로 곡을 하지는 않지만 이제 와서 딸들도 며느리들도 누워있는 노인에게 할 말이 많다. 시름시름 앓던 노인네가 그만 세상을 버린 것이다. 그들은 노인이 햇빛을 원했을 때 음지에 두었고 물을 원했을 때 목마르게 했다. 척박한 토양에 억지로 뿌리내리기가 너무 힘에 겨웠을 게다. 노인은 들풀도 들꽃도 아니었고 야생화는 더더욱 되지 못했다. 언제 또 다른 곳으로 옮겨심기를 당하기 전에 한 곳에 오래오래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갈 수 있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그를 따뜻하게 반기고 마음놓고 뿌리내릴 수 있는 곳을 위하여 추운 날에도 새벽마다 그렇게 정성을 다 했는지도 모른다. 신은 가엾은 노인을 정착할 수 있는 곳으로 이끌어주셨다.

용서해 달라고 몸부림치지만 이미 노인은 차가운 정물처럼 말이 없다. 노인의 얼굴은 편안해 보인다. 평소에 그리도 원하던 정착 할 수 있는 곳에 그의 몸을 의지하게 된 것이다. 이곳저곳 옮겨심기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곳도 마음 편히 뿌리를 내리지 못했었다. 이번엔 타의가 아니고 노인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한 토양이다.

생명활동이 정지되고 그 개체를 구성하는 전 조직 세포의 생활기능이 정지되었다.
힘겹게 돌아가던 재봉틀 소리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