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어미 / 김혜정

테오리아2 2022. 9. 2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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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의 일터인 어린이집 베란다 밑에서 새끼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베란다로 달려 나가 법석을 떨었다. 이제 갓 돌을 지난 아기들까지 새끼고양이를 가리키며 옹알이를 했고 네댓 살 먹은 아이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어린이를 돌보는 선생들도 일제히 고양이를 보러 베란다로 나갔다.

어미고양이는 하고 많은 아파트를 두고 왜 하필 어린이집 베란다 밑에 둥지를 틀었을까? 어미 고양이도 예쁜 아가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그 모습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선생님들이라면 자기 새끼들을 잘 보살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꼬물꼬물한 새끼고양이 다섯 마리는 어미젖을 먹고 있었다. 얼룩무늬와 검은색무늬가 그려져 있는 모습이 어미와 아빠고양이와 똑 같아 금방 그들의 새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몸집이 너무 작아 젖을 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새끼고양이를 어미는 안아주고 핥아주기를 반복했다. 젖을 다 먹이고 난 뒤에도 어미는 새끼를 떠나지 않고 주위를 한참 꼼꼼하게 맴돌았다. 아무리 어린이집 베란다 밑이라고 하지만 어미의 눈에는 온전하게 믿음이 가지 않는 눈치였다. 어린이집에 처음 아이를 맡기러온 엄마의 마음처럼 모든 게 걱정스러워서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난주에는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온 엄마가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었다. 아기 엄마는 불안한 마음에 아기를 선뜻 내려놓지를 못했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는 바쁜 와중에도 어린이집에서 받아간 알림장에 밤새 있었던 일을 빼곡하게 기록하여 나의 손에 쥐어주었다. 어미의 마음이었다. 새끼 고양이에게 젖을 다 먹이고도 꼼꼼하게 주위를 살피는 어미고양이처럼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해 줌으로서 교사와의 소통을 꾀하는 것이었다.

 

어미 고양이는 만날 때마다 나를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웃는 낯으로,

 

 

 

“걱정하지 말고 먹이 구하러 갔다 와. 그동안 내가 잘 보살펴줄게” 라고 혼잣말을 했다. 어미 고양이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한참 동안 빤히 쳐다보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식에 대한 보호본능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한 번은 어미고양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 주려고 못 쓰는 헌 담요를 덮어주었다. 먹다 남은 우유도 갖다 주었다. 허지만 어미고양이는 나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혹에 찬 눈으로 우유를 조금 맛보았다. 안심한 어미가 자리를 내어주자 새끼고양이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를 맞대고 우유를 다 먹어버렸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오래전 울산에서 일어난 서현이 사건이 생각났다.

서현이는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부모가 이혼을 하여 계모의 손에 자라던 서현이는 소풍을 가겠다고 떼를 쓰다가 무차별 폭행을 당해 갈비뼈가 폐를 찔러 사망하고 말았다. 서현이한테는 엄마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였을까? 버리고 간 생모나 폭행을 한 계모나 고양이보다 못한 어미들이 아닌가.

 

오늘 아침에는 출근하자마자 베란다 문을 열어 보았다. 새끼들에게 젖을 내어주고 있는 어미고양이의 모습이 전과 달라 보였다. 방패막이를 하느라 주위를 맴도는 아빠고양이 역시 기운을 잃고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심상찮은 정적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자세히 보니 새끼가 네 마리밖에 없었다. 한 마리는 어디 갔을까? 한참을 찾아보니 계단 밑 깊숙한 곳에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어미고양이는 죽은 고양이 곁을 떠날 수가 없어 그렇게 힘없이 누워 있었나 보았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어찌나 측은하게 보이던지 가슴이 저려왔다. 밤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오후에 죽을 조금 데워 현관문을 열었더니 고양이 가족이 보이지 않았다. 자리를 옮긴 모양이었다. 더 이상 어린이집 베란다 밑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음이 틀림없었다. 나는 죽을 든 채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돌아왔다. 아직 어린 새끼고양이들을 데리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쪼록 이 봄을 잘 넘길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이 봄이 지나면 새끼들도 훌쩍 자라 어미 곁을 떠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