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훨훨 날아오르는 연, 날지 못하는 연. /정현교
제9회 시흥문학상 수필부문 동상
훨훨 날아오르는 연, 날지 못하는 연.
정현교
태백준령이 화사한 가을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 휴일.
발길 닿는 대로 산을 오르다 멈춘 곳은 오대산의 어느 암자였다. 두리번거리다 수행중인 스님과 눈길이 마주치게 되었다. 나를 본 스님은 “오늘은 목구멍의 거미줄이 걷히게 됐구먼!” 하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희죽이 웃기만 했다. 스님은 나를 툇마루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일단 첩첩산중에서 우호적으로 맞아주는 스님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스님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동안 사람을 구경하지 못해 목구멍에 거미줄이 얼기설기 엉켰다는 설명이었다. 먹지 못해 목구멍에 거미줄을 친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말을 하지 못해 거미줄을 친다는 소리는 생전 처음이었다. 스님은 목구멍의 거미줄을 말끔히 걷어낼 작정인 듯했다.
“처사는 한밤에 연을 띄워 본적 있소? 나는 ”그럼요“ 하고 대답하려다 되물었다.
”밤에 연을 띄우다니요?“ 스님이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세상에 어느 누가 한 밤에 연을 띄운단 말인가! 정월 대보름에도 한밤에 연을 띄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스님은 매일 밤 연을 띄운다고 했다. 그것도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쉼 없이 띄운다고 했다.
스님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이 곤히 잠들어 있는 한밤, 오대산 암자에는 하늘 높이 연이 날아오른다고 했다. 초저녁에 날아 오른 연은 밤이 이슥할 때까지 높이 난다는 것이다. 새벽녘까지 날아 오른 연은 까만 점으로 오그라들어 여명이 짙어질 때면 초점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나는 연을 너무 높이 띄우다 줄이 끊어져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발 천오백 미터도 넘는 곳이라 바람도 강할 테니!
연은 새싹이 움트는 봄날에도, 별이 쏟아지는 여름 밤에도, 단풍이 불타는 가을 밤에도, 삭풍(朔風)이 몰아치는 겨울 밤에도 어김없이 띄워진다는 것이다. 스님은 그렇게 매일 밤 연을 띄우느라 뜬눈으로 지새운다고 말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른 아침부터 잃어버린 연을 다시 만들고 줄을 꼬느라 하루 해가 짧다고 했다. 연은 날이 갈수록 자꾸 커지고 줄도 더욱 길어진다며 스님은 내게 손바닥을 불쑥 내밀어 보였다. 스님의 손바닥은 굳은살이 알알이 배어 있었다. 왜 그토록 연을 띄우는지 궁금했다.
“연은 소원을 기원하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나도 얼른 맞장구를 쳤다. “내 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는 소원을 기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지요.” 스님의 설명은 어딘지 모르게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내가 되물었다. “이런 산중에서 그것도 한밤에 연을 띄워본들 누가 보겠습니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지요. 어디 그뿐 이겠습니까. 명색이 중인데 적어도 중생들의 소원도 함께 실어 보내야지요. 俗世의 질박한 삶도 명치를 뜯어내는 절절한 아픔도, 치를 떨게 하는 미움도, 가슴을 저리게 만드는 그리움도 함께 띄워 보내다 보니 연이 자꾸 커질 수밖에요”
연에는 살을 파고드는 고뇌와 소름 끼치는 외로움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렇게 애써 매일 연을 띄워 보내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 질 것이라 여겼는데, 오히려 빈 가슴은 더 큰 고뇌로 채워진다고 했다. 스님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스님의 표정은 세상의 고뇌를 온통 혼자 떠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가롭게 연이나 띄우면서 무슨 고뇌가 그리 깊다는 것인지? 수행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인가?
마침 방문이 빠금히 열려있었다. 그 안을 훔쳐보고 싶었다. 속내를 들킬까 싶어 찻잔을 들고 얼굴을 반쯤 가리며 틈새를 재빠르게 살폈다. 방안은 틀림없이 연을 만드는 재료들로 어지러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예상은 빚나갔다. 방안은 의외로 깨끗했다. 그 흔한 한지 한 장도, 하다못해 줄을 꼬다 남은 끄나풀 한 가닥도 보이지 않았다. 더욱 궁금했다. 스님이 정곡을 찌르고 들었다. “궁금하지요?” 내 속내가 들통 났나 싶어 얼굴을 붉혔다. “마음의 연입니다.” “마음의 연?”
스님은 언제나 마음의 연만 띄울 뿐 실제로 연은 한 번도 접어보지 못했다며 行하지 못하는 나약함을 부끄러워했다. 밤이 이슥토록 띄우는 마음의 연은 무엇이고 행하지 못한 부끄러움은 또 무엇인가? 스님의 설명은 계속 되었다.
어차피 속세를 떠난 몸 딱히 두고 온 그리움 같은 것은 없지만, 외로움만큼은 得道에 이를 정도라고 했다. “화두를 찾아 정진해야하는데 한가롭게 연이나 날리고 있으니!”하며 말을 흘렸다. 스님의 한탄은 툇마루를 주저앉히고도 남을 만했다. 스님이 찾는 화두란 게 도대체 뭐 길래 그토록 괴로워하는 것인지 나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내가 알 수 없는 뭔가 특별한 것인 듯했다.
마음을 잡지 못해 불경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인가? 수행의 참뜻을 깨달을 수 없어 방황하고 있는 것인가? 수행이란 아무래도 불경의 글자만을 외우는 것이 아닌듯했다. 스님은 끝내 화두의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런 스님의 속내를 한나절의 짧은 시간에 알아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행이란 자체가 뼈를 깎는 고뇌일 것으로 짐작할 뿐이었다. 스님은 자신의 뒤를 이어 수행하게 될 스님도 역시 마음의 연을 띄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내게 향긋한 차를 연거푸 권했다. 나로선 생각지도 못한 횡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첩첩 산중이라 마땅히 대접할게 없으니 물이나 먹여야지!”
스님의 얼굴에는 짓궂은 미소가 흘렀다. 스님의 그런 짓궂음에서 나는 오히려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다감하고 때 묻지 않은 풋풋한 인간이었다. 누구와도 통할 수 있는 툭 터진 그런 사람이었다. 줄곧 느끼고 있던 이질감을 한 순간에 떨칠 수 있었다.
스님의 표현은 투박했다. 미사여구로 포장하려 들지도 않았다.
“여긴 뱀이 많아요. 녀석들이 툭하면 천정을 쏘다니지요. 중이라 죽일 생각은 못하고 천정 곳곳에 압핀을 꽂아 두어도 소용이 없어 그냥 동거하고 있지요. 새들은 좋은 친구이긴 한데 제 배만 부르면 날아가 버려 항상 아쉽지요. 좀 더 오래 붙잡아 놓을 요량으로 좁쌀을 구해 뿌려줍니다. 잔머리를 굴린 것이지요. 허 허 허”
철저하게 재단되고 포장된 말에 익숙해진 내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사람을 구경하지 못해 목구멍에 거미줄을 친다거나, 땔감을 등짐으로 져 나르고 장작을 패느라 굵어진 손마디로 차를 따르는 손길이 정겨웠다. 나는 오랜만에 죽마고우를 만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너덧 시간이나 그렇게 스님과 무릎을 맞댄 채 혀끝을 휘감는 茶香에 마냥 취할 수 있었다.
해가 서산에 걸릴 즈음 나는 암자를 뒤로 한 채 발길을 떼었다.
돌아오는 길목마다 스님의 해맑은 미소가 어른거렸다. 접근할 수 없을 것으로만 여겨지던 수행의 벽을 조금이나마 넘겨다 볼 수 있었다는 특별한 자부심에 젖어 들었다. 마치 내가 수행의 반열에 오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스님의 고뇌를 나눠 짊어진 것 같아 괜히 어깨가 무거워 나도 몰래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銀河의 세계는 스님이 띄워 보낸 세상 사람들의 고뇌가 빼곡히 쌓여있을 것만 같았다. 오늘 밤부터는 내 삶의 아린 것들도 함께 올려 보내질 것이라 기대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그날 밤. 나는 땅거미가 스멀거릴 때부터 스님의 연이 떠오르기를 고대하며 오대산을 주시했다.
별이 총총한 밤. 스님의 연이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스님의 연에는 내 소원이 세상 사람들의 기원과 함께 버무려져 있었다. 그것으로는 흡족할 수 없었다. 나는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내 마음의 연을 접기 시작했다. 연에는 명치에 달라붙은 미움도, 가슴을 저리는 외로움도, 전신에 켜켜이 달라붙은 삶의 무게들을 차곡차곡 포개었다.
그리고 연을 날렸다. 그러나 내 연은 날아오르지 못했다. 나는 안달했다. 연줄을 길게 늘어뜨리며 옥상을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연은 곤두박질만 칠뿐 끝내 날아오르지 못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내 마음의 연은 날아오르기는커녕 되레 아린 가슴을 들쑤시기만 했다.
스님의 애꿎은 고뇌가 내게 덤터기 씌워졌다고 탓했다.
지금까지 고뇌와 같은 것들은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그저 미움은 분노로 그리움은 외로움으로 덧칠하며 살았을 따름이다. 모르면 약인 것을 사색하게 된 것이 예기치 못한 마음의 병을 불러들였다. 가을이 다 가도록 연은 한 장도 띄우지 못한 채 얼기설기 꼬여진 연줄이 전신을 포박했다.
내게 덤터기 씌워진 스님의 고뇌를 암자에 벗어 던져 버릴 작정이었다.
신발 끈을 조여 매고 눈 쌓인 산을 헤치며 암자로 향했다. 그러나 스님은 이미 그곳을 떠나고 없었다. 텅 빈 암자에는 미쳐 스님이 챙겨가지 못한 툇마루의 茶香만 점점이 묻어나고 있을 뿐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