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통싯돌/도독동굴/붕자골/주인석 실험수필 발표
실험수필을 쓰면서
수필에다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를 접목시키고, 가전체 소설 형식을 빌려 스토리텔링화한 수필입니다. 다시 말하면, 수필+구전된 이야기+가전체 소설 +스토리텔링 = 실험수필입니다. 저는 신춘문예 등단 이후, 수필에다 구전된 이야기를 입혀 스토리텔링 책을 4권 출간했습니다. <울산사랑길><감포깍지길><울산어울길><간절곶소망길> 외에 수필집으로는 <낀>이 있습니다.
수필의 형식을 약간 벗어나 실험적 수필을 쓴 것은 지금까지 수필이 너무나 형식적이고, 비슷한 내용이 많아 지루하고, 사적인 이야기에 치우쳐 있음을 탈피하자는데 큰 목적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구전된 이야기가 지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수필 형식으로 꼭 풀어보겠다는 제 의지는 스토리텔링기법이었습니다.
가전체 문학에서 차용한 의인화 기법은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읽으며 교훈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할머니세대가 사라지면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도 함께 소멸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라면 아무리 바빠도 끝까지 듣고 맞장구쳐주며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그냥 녹취록 기록하듯이 옮겨 적기만 하면 문학작품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필과 접목시켜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든 문학의 전환점에는 시끄러운 말들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수필이니, 수필이 아니니 왈가왈부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은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교시의 문학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구전된 이야기에 저의 체험을 덧붙여 주제문을 확실히 살렸습니다. 그러니 구전된 문학을 접목시켰다하여 수필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구전된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화하여 가전체 소설을 접목시켜 실험수필로 쓰게 된 배경과 목적을 밝히는 바입니다.
이에 덧붙여 실험수필에 선구자로 나서주신 많은 원로작가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특히, 실험수필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으신 윤재천선생님과 오차숙선생님은 우리 시대 실험수필의 큰 기둥이 되어주셨고, 새내기 수필가인 저는 서까래 몇 개를 보태지만 집 한 채를 짓는 것만큼 기쁩니다. 실험수필이 널리 알려져서 수필이 문학의 변두리로 내몰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설픈 작품 세 편을 보탭니다. 변변찮은 사람의 작품을 실어주심에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부끄럽습니다.
2013년 9월 19일 가을
수필가 주인석
<실험수필1-주인석>
통싯돌 /주인석
나는 바람기 많은 남선비요. 나는 대문을 지키는 신이고, 내 조강지처는 정짓간을 다스리는 ‘조왕각시’올시다. 나는 여자 욕심이 많아 첩실을 두었는데 그녀를 ‘측신각시’라 부른다오. 시샘이 많은 그녀는 자주 정짓간 자리를 탐냈으나 나는 그녀에게 뒷간 자리를 내주었소. 기가 센 두 여자가 날마다 다투니 내 머리가 복잡해졌소. 하는 수 없이 나는 뒷간을 정짓간과 가장 먼 곳으로 옮겼소.
멀리 떨어진 두 각시는 서로 헐뜯는 일이 작아지더니 마침내 서로 관심을 두지 않았소. 두 곳을 오가며 내가 정치를 잘한 덕인지 줄곧 평화가 이어졌소. 그런 까닭으로 나는 두 여자를 두고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거나 후회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소.
두 각시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 남들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소. 조왕각시는 정짓간을 혼자 차지하고 앉아 떵떵거리며 잘 지냈소. 그런데 뒷간에 있는 측신각시의 얼굴을 보니 연일 심기가 불편해 보였소. 이유를 물어보니 하루에도 사람이 수 없이 들락거리니 조용할 시간이 없는데다가 불쑥불쑥 문을 열고 들어와서 심장이 떨어지겠다고 하소연을 하였소. 그러다보니 측신각시는 심보가 점점 더 사나워졌소.
측신각시는 원래 애교가 많고 사랑스러웠소.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것을 즐기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땋으며 몸 가꾸기를 좋아했소. 이 일을 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노크 없이 들어와 굵은 똥을 툭툭 떨어뜨리거나 물똥을 뿌지직 싸대거나 무언가를 빠뜨리면 측신각시는 깜짝 놀라서 무척 화를 낸다오.
측신각시의 노여움은 극에 달했소. 하루는 어린 아이가 뒷간에 빠졌는데 측신각시는 땋아 내린 머리카락으로 아이를 둘둘 말아 버렸소. 사람들은 아이를 건져내 깨끗이 씻겼지만 아이의 온몸에는 똥독이 퍼진 상태였소. 2,3일이 지나고 아이는 결국 죽었소. 처음에 나긋나긋했던 측신각시는 점점 심술을 부렸소. 하루에도 몇 사람이 뒷간에 빠졌고 변을 당했소.
측신각시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주의를 부탁했소. 그리고 뒷간에 빠졌을 때는 빨리 길일을 택해 뒷간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측신각시한테 빌어야 한다고 알려 주었소. 그리고 뒷간문 앞에다 ‘헛기침’이라고 써 붙여 놓았소. 측신각시를 놀라지 않게 하려면 뒷간에 들어가기 전과 후에 ‘헛기침’으로 측신각시에게 알리면 되오.
이를 잘 알고 지키는 사람은 뒷간에 들어가기 전에는 헛기침을 하거나 문을 톡톡 두드리더이다. 측신각시는 헛기침 소리를 듣고 누가 오는가보다 하여 기다리고 있다가 ‘통괘하고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소. 그때부터 뒷간을 ‘통시’라 부르는 사람이 생겼고 ‘통시’라는 말의 뿌리가 되었소.
아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기복이 심할 수 있단 말이오? 뒷간 앞에서 헛기침한 번만으로도 이와 같이 화를 면할 수도 있고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 하물며 사람의 모든 일이야 말해 무엇 하겠소? 소소한 일로 타인을 놀라게 하거나 화가 나게 한 일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소?
부모가 자식의 방을 들어갈 때, 자식이 부모의 방을 들어갈 때에도 서로 예를 지켜야 할 것이요, 승강기를 타고 내릴 때도 벨이 울리고 난 뒤, 약간 비켜서서 기다리면 불쑥 나타난 도적 같은 남자나 귀신같은 여자를 보고 놀라 심장을 쓸어내리는 일은 줄어들 것이오.
어디 그뿐이겠소. 나는 얼마 전에 목욕탕에 갔다가 낭패를 보았소. 화장실에 앉아 똥을 누고 있는데 산적 같은 놈이 갑자기 문을 여는 것이었소. 목욕탕에서는 모두가 다 벗고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화장실 문을 불쑥 열면 훌렁 벗은 상방이 놀라기는 마찬가지요. 자신이 당하기 전까지는 남의 일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오. 대부분 사람은 타인을 나무라기만 할 뿐 자신을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오. 그러니 이런 일을 두고 어찌 미혹된 일이 아니라 할 수 있겠소?
뉴스를 보면 심히 걱정이오. 자신의 영역에 조금이라도 침범한다 싶으면 측신각시 같이 살생도 불사하는 세상이니 말이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이라도 하셨는지 그때, ‘헛기침’이라는 것을 했소. 지금 헛기침으로 자신을 알리는 사람은 없지만 ‘똑똑’이라는 최소한의 노크는 타인의 영역을 인정해주는 배려가 될 것이오. 작은 배려는 하늘 끝까지 올랐던 나쁜 감정을 땅으로 떨어지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될 것이오.
‘측신각시도 어지간히 독이 올랐으면 그랬을까’라며 각시를 두둔했다가 각시 편드는 오줄없는 놈에, 제 각시도 처신 못하는 놈이라고 나는 뭇사람들에게 돌팔매를 맞았소. 하기야, 각시 하나 얻기도 어렵다는 세상에 내가 각시를 둘이나 두고 사회에 민폐를 끼쳤으니 돌팔매를 맞아도 싸다오. 그런 이유인지 모르나 우리 집 마당에는 돌이 무더기로 날아들었소. 내로라하는 고관대작들부터 무지렁이들까지 던지는 돌에 죽도록 맞았소. 그러고 보니 사람들의 눈은 모두 남을 보기에만 급급한 모양이더이다. 눈알이 앞을 향하고 있고 360도 회전이 안 되니 무어라 말할 수도 없는 당연한 이치일지 모르겠소이다만.
“알게 모르게 오래도록 남의 흉만 보아왔으니 하루아침에 자신을 들여다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오.”
나는 마당에 쌓인 돌로 측신각시가 사는 뒷간, 그러니까 통시의 담을 높이 쌓았소. 훤한 낮에는 헛기침을 하고 통시 안으로 들어와 얌전히 똥오줌을 눴으나 밤이 되니 통시 밖의 돌무더기에 그것들을 사정없이 갈기고 도망을 가는 이들도 많이 있더이다. 밝고 어두움의 차이는 무섭소. 세상의 빛이 어디 하늘에만 있더이까?
이 돌무더기가 통싯돌의 유래가 되어 바닷가에 배가 입출항 하는 곳에는 거의 대부분 있소. 울산의 진하항에는 고기잡이를 나갈 때, 선장이나 선원이 통싯돌에 오줌을 누어 표시하는데 이는 바다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오. 또, 되돌아 올 때도 똑같이 하는데 이는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을 항구에 알리는 것이오. 알리는 방법이 참으로 웃을 만하지 않소?
내가 두 여자를 거느리고 살면서 느껴지는 바가 있어 통싯돌 이야기로 그 뜻을 부연해 보았소.
<실험수필2-주인석>
도독동굴/주인석
나는 지금까지 한이 되는 일이 있다오. 밀고는 절대 아니라오. 나도 무척 속이 상해서 이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오. 배신이란 것이 무엇이오? 믿었던 사람에게 신의를 저버린다는 것 아니오?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기대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마음이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배신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오. 그래서 무엇이 배신인지 일의 자초지종을 들려주려 하오.
우리 마을에는 도독동굴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오. 입구에는 큰 바위 두 개가 솟을대문처럼 서 있고 한 사람 정도 빠져나갈 수 있다오. 그곳으로 들어가면 작은 동굴 입구가 보일 것이오. 동굴로 들어가려면 1m 정도 높이를 풀썩 뛰어내려야 하오. 입구는 좁으나 들어가면 5-6명이 앉아서 움직일 수 있는 제법 넓은 공간이 나온다오.
그곳이 모두가 아니라오. 그 공간과 연결된 긴 굴이 뚫려 있다오. 체구가 작은 사람이 앉은걸음으로 굴을 따라 들어가면 또 다시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이곳이 두 번째 공간이라오. 이렇게 동굴은 계속 이어져 있고 마치 대나무 마디처럼 넓은 공간과 좁은 공간이 계속 이어져 나온다오.
적이 알고 뒤따라 들어오더라도 좁은 통로를 막아버리고 넓은 공간에 몸을 숨기면 들킬 염려가 없는 이곳은 자연동굴이라오. 여러 개의 바위들을 짜 맞추어 놓은 것처럼 서로 이를 물고 동굴이 되어 있다오. 동굴 안의 모습은 자연의 신비로움 그 자체라오. 내가 동굴을 이렇게 상세히 설명해 주는 것은 지금은 동굴이 너무 오래되어 무너질 염려가 있고 내부가 좁아서 위험하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오. 내가 한이 맺힌 것은 이 동굴에서 있었던 일이라오.
임진년에 왜란이 나서 마을 사람들은 동굴로 피난을 갔다오. 왜군이 마을에 불을 지르고 쑥대밭을 만들었다오. 일찍이 내 남편은 전쟁터에 나가 있는 중이었고, 나는 혼자서 딸을 낳아 키우고 있었다오. 나도 살아야겠기에 딸을 안고 동굴로 갔었다오.
“앙아앙, 앙앙앙, 으앙앙앙.......”
난리에 놀란 딸은 아무리 달래도 계속 울어댔다오. 아무래도 딸이 경풍驚風을 맞은 듯하여 나는 젖을 물리고, 딸을 달랬다오. 그래도 딸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그때,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오.
“왜군들이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몰려오겠는데......”
사람들은 점점 더 걱정스런 얼굴로 나와 내 딸을 번갈아가며 보았다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딸을 달랬다오. 그때 마을의 촌장인 남자가 나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오.
“그만 나가시오. 다수를 살리는 길을 모른다 말이오?”
고함을 지른 촌장은 평소 나를 못살게 굴었던 남자라오. 그는 내게 수청을 들라하였다오. 그는 권력을 이용하여 나를 수하에 넣어놓고 부리려 하였지만 나는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오. 그는 앙심을 품고 있다가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이용하여 앙심을 드러냈다오. 겉으로 보아 내가 나가줘야 맞는 일이지만 그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나 외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오. 그를 추종하는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에 모두 동조를 했다오.
나는 굴에서 쫓겨나왔다오. 나는 무섭고 외로운 길을, 딸을 안고 걸어 내려가다가 왜군을 만났다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와는 달리 왜군은 나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듯이 말을 걸었고, 마차를 태워 막사로 데려 갔다오. 배고픈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오. 그리고 이런 저런 일들을 하나씩 캐물으며 혼자 아이를 키우면 힘들겠다며 내 마음을 읽어 주었다오. 그들의 따뜻한 말에 내 마음은 녹아내렸다오.
며칠이 지나자 왜군은 내게 마을 사람들을 해치지 않을 테니 어디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했다오. 나는 왜군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말했다오. 그리고 촌장만 벌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오. 나는 마을 사람들이 무사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오. 그런데 방향이 영 어긋났다오.
왜군은 도독동굴을 찾아내 입구에서 큰 소리를 질렀다 하오. ‘촌장에게만 책임을 묻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살려주겠으니 빨리 나와라.’ 그런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고 하오. 촌장은 나가면 모두 죽는다며 아무도 못나가게 회유를 하였다하오. 성질이 급한 왜군은 입구에 불을 지피고 뿌연 연기를 동굴 안으로 몰아넣었다오. 굴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연기에 질식되었고 튀어나온 몇몇 사람만 살아남고 대부분 죽고 말았다오.
이 사건을 두고 지금까지도 나를 배신자라고 하오. 내가 모두 잘했다는 것은 아니라오. 그 후 왜군들은 내게 그들의 수하가 되어 편히 살라고 했지만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 누구를 의지하기보다 혼자 해쳐나가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오.
나는 촌장을 믿었다오. 또, 친절한 왜군도 믿었다오. 공과 사는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촌장이 마을의 대표어른으로 주민인 내게 잘해 준 것은 공이 아니오? 그것으로 끝나야 한다고 보오. 그런데 내게 무리한 요구를 했고 그로 인해 큰일이 벌어졌으며 지금까지도 한이 되어 있다오.
한이 맺힌 이유 중에 하나가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촌장의 말만 믿고 후손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오. 촌장이 내게 어떻게 했는지를 전혀 모르고 나를 배신자라고만 생각한다는 것이오. 나는 촌장에게 주민으로 최선을 다했고, 왜군에게도 마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결국 내 목숨까지 내놓았다오. 그런 까닭으로 나는 지나온 일과 내 행동에 대해서 털끝만큼도 후회하지 않는다오. 배신이라는 말에 대해 수십 번도 더 생각해 보았다오. 어떤 경우에 써야 합당한 말인지 정녕 모른단 말이오?
아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까지 간사할 수가 있단 말이오? 일제강점기, 그 절박한 상황에도 사심을 가지고 한 사람을 사지로 몰았으니 하물며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야 더 말하여 무엇하리요?
나는 일전에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오. 내가 힘들었을 때, 공감해 주며 함께 도반이 되었던 사람이라오. 그는 학업에 정진하였고, 나는 정성을 다해 그를 보살펴 주었다오. 좋은 결과를 얻은 그는 내게 고맙다고 난리가 났다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는 한동안 홀연히 내 곁을 떠나 이 곳 저 곳을 배회한다는 소리를 들었다오.
그런 그가 보낸 뜻밖의 문자에 나는 놀라서 나자빠질 뻔 했다오. 그는 내가 아는 촌장을 모시고 있다면서 그것을 내게 자랑처럼 말 하더이다. 세상살이가 녹록치 않으니 실리를 쫓는다고 어찌 나무랄 수 있으리오? 같은 계열의 일이라면 힘이 있는 쪽으로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지사요, 더군다나 미관말직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리요?
어지간한 강단을 가지지 않고는 목숨을 내 놓고 자신을 지키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오. 이것이 힘없는 사람들의 현주소라는 것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알 것이오. 나 또한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의 희생에 가담했으니 배신자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소. 이런 일을 두고 어찌 미혹된 일이 아니라 할 수 있으리오?
“알게 모르게 오래도록 배신을 일삼아 왔으니 하루아침에 신의를 지키기란 쉽지 않을 것이오.”
울산 진하마을, 해수욕장의 남쪽 솔밭 동굴은 범을 잡았다 하여 범굴, 박쥐가 많이 산다고 박쥐굴, 도독동이라는 마을 명칭을 따와서 도독동굴이라 부르기도 한다오. 도독은 장군의 진지 또는 벼슬을 칭하는 말인데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가 이곳에 살았다고 도독동이라 부른다하오. 이곳을 들어가 보며 느껴지는 바가 있어 도독동굴 이야기로 그 뜻을 부연해 보았다오.
<실험수필3-주인석>
붕자골/주인석
만일 골짜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산을 무엇이라 불렀을 것 같소? 한 덩어리가 되어 팽팽하게 솟구친 땅을 두고도 우리는 산이라 불렀겠소? ‘산’이라는 낱말의 탄생은 ‘골’이 있었기 때문일지 모르오. 나는 골짜기의 고통이 아름다운 산을 만들었다 생각하오. 우리의 삶도 굴곡이 있을 때, 더 인간답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오.
울산의 송정과 대송 그리고 평동은 산으로 둘러싸인 삼형제 마을이라 하오. 이 마을 산신령은 자부심이 대단했소. 커다란 산을 지킨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산짐승들의 충성심이 더 큰 이유였소. 많은 짐승들은 앞을 다투어 산신령에게 좋은 선물을 했소. 그런데 우리 참새족속들은 신령님께 한 번도 선물을 하지 못했소.
나는 다리도 짧고 입도 작아 스스로 먹고 살기에도 힘이 들고 바빴소. 기가 죽은 나는 우울한 마음을 달래려고 간절곶 바닷가로 날아갔소. 그때 마침 해변에서 꿈틀거리는 무리들이 내 눈에 보였소.
“저게 무엇인고?”
나는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가까이 가 보았소. 길쭉한 것들이 무리지어 모래를 뚫고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하는 것이었소.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눈은 번들거렸소. 길게 나있는 옆줄은 꼬리부터 머리까지 이어져 있었으며 검은 배에는 비늘이 하나도 없었소. 뱀은 아니나 뱀 같았소. 나는 어디선가 많이 본 모양이다 싶었소. 그 순간, 일전에 신령님의 말을 기억해내고는 내 무릎을 쳤소.
‘내가 요즘 밤소경병이 들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구나. 누가 약을 좀 구해 다오. 다산이라는 학자가 ‘해대려海大鱺’라는 것을 다려서 먹으면 좋다고 했다는구나. 그 모양새가 낮에는 모래에 몸통을 반쯤 숨긴 채 머리를 쳐들어 눈을 번들거리며 사방을 살피는 섬뜩한 모습이고, 밤에는 다른 물고기들이 잠잘 때 습격해 잡아먹는 괴물이라 하는구나.’
동물들은 섣불리 나서지 못했소. 괴물을 잡아온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오. 해대려를 신령님께 갖다 바치는 동물은 분명히 큰 칭찬과 포상을 받을 것이오.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큰일이라고 생각했소. 그런데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나는 심장이 뛰어서 날갯짓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소.
‘이놈이 해대려구나.’
단숨에 해대려를 물어다 신령님께 갖다 바치고 싶었지만 너무나 무섭고 떨렸소. 나는 하루 종일 해대려를 지켜보았소. 저녁노을이 짙어지자 그것들이 휴식을 취하려는 듯 길게 누워 눈을 감는 것이 보였소.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해대려들의 눈을 향해 직진으로 날아갔소. 나는 사정없이 해대려의 눈을 쪼아놓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소. 통증으로 온몸을 꿈틀거리던 해대려가 실신했는지 죽었는지 조용해졌소.
나는 살금살금 날아가서 꿈쩍도 안하는 해대려를 다시 쪼아보았소. 움직임이 없었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해대려를 물고 땀을 뻘뻘 흘리며 신령님께로 날아갔소. 산꼭대기에 거의 다 갔을 즈음, 갑자기 해대려가 꿈틀거렸소. 나는 너무나 놀라서 물고 있던 해대려를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소. 해대려는 산에 떨어졌고 발버둥을 쳤소.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한 덩어리였던 산이 움푹 파여 두 개로 나누어지고 골짜기가 생겨났소.
해대려는 골짜기에서 몸부림치다 쳐 박혀 그대로 죽었소. 해대려는 다른 말로 붕장어라고도 한다오. 해대려가 떨어진 골짜기는 그의 모양을 닮아 구불구불하다고 사람들은 ‘붕자골’이라 불렀소. 해대려를 신령님께 바치지도 못하고 움푹 패인 골짜기만 만들었다고 산짐승들의 원성이 컸소.
그보다도 눈앞에서 해대려를 놓쳐버린 나는 너무 억울하고 분했소. 신령님께 칭찬을 받고 포상으로 우리 참새족속들이 권세를 누리기 일보직전이었소. 나는 충격이 너무 컸소. 몸집이 작아서 가만있어도 적이 수두룩한데, 조잘조잘 애교가 많다고 시기 질투하는 짐승까지 모두 나의 적이 되었소. 게다가 나는 못 생겼고 하는 일마다 실패를 하니 속이 상해 죽을 지경이었소. 나는 날짐승으로 태어난 것이 무척 못마땅했소. 늘 불만 속에 살았소. 그래서 그 길로 나는 산을 내려와 사람들이 사는 들판으로 갔소.
그때까지 들판에는 다른 새들은 없었소.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나를 위한 것이었소. 나는 새로운 세상을 얻었소. 부지런히 움직이니 들판에 곡식이 모두 내 것이었고 양식 걱정 없이 살았소. 또 만물의 영장인 사람과 가장 가까운 새라는 자부심도 있었소. 나는 산에서 내려온 것을 잘한 일이라 생각했소. 그런데 그 행복은 길지 않았소.
가끔 우리 족속들이 덜 익은 곡식에 입을 대다가 허수아비한테 혼이 나기도 하고, 아이들이 쏘는 총에 맞아 죽는 일이 허다해졌소. 또, 가끔 산에서 내려온 매나 독수리 같은 족속들과 싸움도 해야 했소. 산에서 살 때보다 더 마음고생이 심해졌소. 원래 살던 곳이 더 좋았는지 모르겠소. 나는 들로 내려온 것을 후회하며 잘못된 일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소. 다시 산으로 돌아갈까 마음먹은 적도 있었소. 그런데 내가 살던 그곳은 이미 다른 짐승이 터전을 일구고 권세를 부리며 살고 있다 들었소.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면서도 들판을 떠나지 않고 있소. 어느 곳이든 적이 없는 곳이 있겠소? 그렇게 생각하니 다소 마음이 편해졌소.
아아,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단 말이오? 새들도 눈앞에 보이는 것에 금세 좋았다 금세 싫어지는데 하물며 사람 사이의 일이야 오죽 하리오? 세상사 변덕을 부리지 않고 어떤 일에도 무던한 마음으로 한 자리를 지키며 신의로 대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생각하오?
나를 두고 덜 익었느니, 깊이가 없느니 하며 촐싹댄다고 한다는 소리를 들었소. 그렇다면, 그들은 잘 익어서 남을 나무라는 것이오? 정말로 잘 익으면 머리가 무거워 고개를 숙이고 다니기 때문에 남이 눈에 안 들어온다고 하였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소는 소요, 아무리 집을 잘 지켜도 개는 개요, 모든 동물들을 위협하고 사람을 물어뜯어 죽일 위세를 가져도 사자는 사자요. 결국 짐승은 짐승일 뿐이라는 것이오. 짐승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개과천선해야 한다 들었소.
최소한 100일 동안 굴 속에 갇혀 쑥과 마늘을 먹고 묵묵히 앉아 스스로를 고치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교훈을 이미 잘 알지 않소? 나보다 덩치가 열배나 큰 해대려를 물고 나처럼 산을 오른 짐승이 있소? 내가 산을 떠나오면서 만들어 놓은 붕자골의 물을 먹고, 마시며 누리는 그들이 나보다 나은 것은 무엇이오?
“알게 모르게 오래도록 변덕을 부리며 살아왔으니 하루아침에 무던해지기란 쉽지 않을 것이오.”
내가 해대려 사건으로 삶의 터전을 바꾸면서 느껴지는 바가 있어 붕자골 이야기로 그 뜻을 부연해 보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