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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좋은수필]실핏줄 타고 흐르는 행복? / 윤묘희

테오리아2 2014. 9. 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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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핏줄 타고 흐르는 행복 / 윤묘희

 

 

그날도 책이 갈 거라는 지인의 연락을 받은 터라 마음 졸이고 있었다. “띵똥” 초인종 소리에 나가 보니 뜻밖에도 집배원 김씨가 서 있었다. 한 손엔 김치박스를 들고, 놀라 묻는 내게 승강기 앞에서 택배기사를 만났다고, 오는 길에 들고 왔다며 우편물과 함께 건네준다. 전에는 외출했다 들어올 때 내가 직접 가져오곤 했는데, 몸이 부실해진 뒤로는 우편물 수거가 제일 힘들었다. 그는 “걱정 말고 어서 건강이나 회복하라”는 인사까지 챙긴다. 이 지역 특성상 근처 단독주택까지 배달 일을 해야 하는 고된 업무 중에도 내 형편을 알고 이런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그는 이 아파트 단지에 십여 년째 드나들고 있다.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라는 것까지 훤히 안다. 의무적으로 일을 했다면, 지역 주민들과 유대가 없었다면 가능한 일일까? 애정을 가지고 충실히 자기 일을 했기에 소통이 되었을 것이다.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참 별일이라고, 오토바이 타고 지나 가는 걸 어쩌다 보기는 했어도 만나본 적은 없다고 한다. 친구의 말이 옳다. 집배원은 우편물 편지함에 꽂아주고 주민들은 뽑아 가면 된다. 그게 당연한 일이니까. 단절된 도시 주거문화의 일면이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점심시간인데도 집배원 오토바이는 가 동(棟)을 바쁘게 돌고 있다. 선거철이나 명절 같은 때는 우편물이 많아서 끼니를 놓치기 일쑤라고 한다. 이들은 내 집을 드나드는 손님이다. 손님을 모른 체하고 밥을 먹는다는 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한편, 지나가는 빨간 자전거를 불러 못밥을 나누던 옛 논두렁 풍경이 떠올라 아련해지기도 한다.

가끔 TV나 신문지상에 집배원의 선행이 소개되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지리적으로 열악한 산간벽지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선행은 더욱 그렇다. 보행이 불편한 독거노인의 약 심부름에서 식품 구입까지 극진히 보살펴준다. 딱히 우편물이 없어도 노인들의 안위(安危)가 걱정되어 가던 길을 애둘러가 돌봐주는 것을 보면 숙연한 마음까지 든다. 그러니 멀리 있는 자식들보다 더 애틋한 정이 들 게다. 점심을 때우려고 미뤄놓았던 밥상을 당겨 “이 자반 좀 들게나.” “어르신 드십시오.” 정겨운 모습이 조손(祖孫)사이 같기도, 모자(母子)지간 같기도 해서 보는 이의 가슴이 따뜻해진다.

어느 날 복도에서 집배원 김씨를 만났는데, 얼굴이 유난히 꺼칠했다. 부인이 암수술을 했다고 한다. 너무 적정하지 말라고 위로는 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중년의 어깨가 더욱 처져 보여 마음이 짠했다. ‘일을 마치고 들어갈 때 멀리서 불이 켜져 있는 자기 집을 보면 다리의 통증도 사라지고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는 어느 집배원의 수기를 읽었다. 길에서 주은 거금이 든 돈지갑을 전해 받고 건네는 사례금도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사랑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는 우편물을 직접 가져다주는 게 당연하다는 사람들이다.

‘우유 주머니에 우편물 꽂아 놓고 갑니다.’낯익은 번호와 문자가 뜬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현관문밖 출입이 쉽지 않을 거라는 그의 배려다. 서둘지 말고 꺼내 가라는 뜻이다. 순간 코끝이 찡해진다. 우편물 걱정만 놓아도 행복하다. 그러고 보니 주위가 모두 고맙지 않은 게 없다. 앞가림에 급급해 메마른 삶을 살아온 내가 이런 후한 대접을 받아도 되나, 갑자기 돌아가신 친정 부모님 생각이 난다. 염반(鹽飯)에 불편한 잠자리일지언정 찾아온 손님은 당연히 묵어가게 하셨던 그 작은 베풂의 덕인 것 같아서.

60여 년 전 나는 섬마을 오지(奧地)에서 자랐다. 우리 집은 맨 끝 동네 끝집이어서 어쩔 수 없이 하룻밤 신세지고 가는 객(客)들이 있었다. 그런 손님 중에 키 작은 집배원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매주말마다 들렀던 것 같다. 하루 일을 마치면 으레 우리집 사랑방에서 저녁 먹고 자고 다음 날 새벽 첫 배로 나갔다. 허물없는 사이가 되다 보니 그도 우리 가족들도 그저 당연한 일이라 여기고 ‘고맙다, 미안하다’ 그런 인사도 나눈 적이 없었다. 다만 그가 어디서 구했는지 겉장이 너덜너덜해진 ‘백조왕자’라는 동화책을 어린 애 손에 쥐어주었던 기억과 백조가 되어 날아간 여섯 오빠를 그리며 우는 내 또래의 공주가 불쌍해서 많이 슬펐던 기억이 생생할 뿐이다.

전국을 누비며 맡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우편집배원들이 있어서 온 세상이 막힘없이 돌아가고 있다. “편지요! 전보요!” 집배원의 고함소리에 맨발로 뛰쳐나가던 시절에는 이들이 들고 온 소식에 우리는 울고 웃었다. 이들은 유일한 메신저요 식구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전자통신이 발전한다 해도 우편집배원은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이들의 작은 나눔 실천으로 사회 구석구석에 온기가 흐른다. 부디 그들이 돋우고 있는 작은 행복의 등불이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출처 : 신현식의 수필세상
글쓴이 : 에세이 자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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