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좋은수필]?돌아보니 꿈이 없다? / 윤묘희
돌아보니 꿈이 없다 / 윤묘희
20여 년 전 방송작가 수업을 할 때 이야기다. 오십 중반에 시작한 늦깎이 공부이다 보니 막내딸 또래의 수강생들과 어울려야 했고 강사진도 거의가 나보다 젊었었다. 그러니 가끔 있는 회식자리에서는 제자인 내게 선생님의 술잔이 먼저 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고, 수업시간에는 기억이 가물거려 젊은이들이 한 번 들어 이해할 대목도 나는 되묻고 곱씹고 하며 힘들게 공부했다. 오죽하면 처음 수강 신청하러 갔을 때도 사무실 직원이 “며느님이나 따님 것을 대신 접수하러 오셨나 봐요.”해서 당혹스럽고 쑥스러웠던 기억도 있다.
그때 매학기, 수업의 일환으로 방송국 견학이 있었는데, 일반인은 꽤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들어갈 수가 있었다.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용지에 방문사유를 적고 주민증을 맡기고 방문패를 받아야만 방송사 현관을 통과할 수가 있었다. 대기자가 많을 때는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우리를 인솔한 젊은 여강사는 달랑 작가 명찰만 재킷 앞섶에 꽂고 경비원의 인사가지 받으며 당당하게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참 많이 부러웠다. 한편 반백의 내 모습에서 자존심도 상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집했다. ‘나도 언젠가는 내 사진이 들어있는 작가 명찰을 달고 당당히 드나들 것이다.’라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드라마를 써야겠다는 생각보다 명찰이 부러워 꼭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유치한 꿈을 키웠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 후 나는 자신과 약속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드라마 한 페이지는 꼭 쓰고 잘 것을. 사실 위아래 식솔을 챙겨야 하는 주부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원고지와 씨름하며 진땀만 흘리다 날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뭐하는 건가. 외롭고 서글펐다. 너무 힘들어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고도 싶었다. 빛을 잃어 해쓱해진 새벽별을 보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세끼밥 걱정 없으면 고생길 들어서지 말고 책보 싸라”며 으름장을 놓던 어느 강사의 충고 아닌 충고가 다잡았던 마음을 여지없이 흔들곤 했다. 가족들의 격려와 친찬도 힘이 되었지만 그 나이에 건강을 해쳐 가며 무슨 극성이냐는 질타도 들었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공부하느라 허리디스크가 생겨서 고생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후 나는 피나는 노력 끝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방송국에 입성하여 그 꿈(?)을 이루었다.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작가 명찰을 달고 몇 년 동안 열심히 드라마를 썼다. 쓰면서 그 명찰에 누가 되지 않는 작가, 그 명찰을 빛나게 하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일념에서 더 많이 노력했고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많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꿈은 나이에 상관없이 살아있는 날까지 그 사람의 삶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요즘 들어 더욱 절실히 느낀다. 노년기에 접어들며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으니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미래에 대한 찬란한 꿈은 상상도 안 되고 고작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고 안녕한 내일을 맞게 해주소서! 하고 빌 뿐이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깊은 뉘우침이 온다. 작은 일이라도 내가 이룰 수 있는 꿈을 찾아 그 일에 매진해야겠다. 백발이 성성한 노老화백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사진을 어느 일간지에서 본 기억이 난다. 퍽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