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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점등 -이은규

테오리아2 2015. 12. 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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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등(點燈)

                                                이은규

 

   책장을 넘기는데 팟, 하고 전구가 나갔어요 밝기의 단위를 1룩스라고 할 때

어둠의 질문,  당신의 밝기는 몇 룩스입니까  탐미적인 어느 소설가는 소셜리

즘이 수많은 밤을 소모시켰다고 불평했어요 그토록 와일드한 오스카 이야기,

안타깝지만 그는 빈궁을 벗 삼아 죽어갔어요 뜻밖에도 오늘의 밑줄은 성서의

한 구절,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다
 
  우리가 혁명의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세상이 점등될 거라 선언해요

 

   때로 이상한 열기에 전구 내벽이 까맣게 그을리기도 할 거예요 어둠의 공기

를 잔뜩 마신 시인의 폐벽(肺壁)처럼,  그럴 때 필라멘트는 일종의 저항선으로

떨려요 가는 필라멘트 같은 희망으로 아침을 켤 수 있을지 귀 기울여요 고백

자면 세상을 글로 배웠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면, 오늘의 밝기는 몇 룩스

니까

                                            『다정한 호칭』 문학동네



  글쎄, 오늘의 밝기는 몇 룩스일까. 오늘에 불을 켜는 행위가 물리적 불빛이든 인문학적 소양이든 성서의 한 구절이든 오늘은 이미 점등되었다. 그러나 이런 점등이 물리적이지 않고 인식적인 것, 깨달음으로 찾아오는 날은 대체 몇 룩스일까.

  시에서 질문은 답을 구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의 질문이 질문을 위한 질문으로 되돌아드는 까닭이다. 거꾸로 필름을 되감아 물결이 동심원의 축을 향해 소멸되는 듯 싶다가 허공으로 튕겨 올라가듯. 그러나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시인은 "세상을 글로 배웠"다고 고백한다. 그의 고백처럼 그의 시들은 몇 개의 사유 틀이 하나의 시적 공간 위에 겹쳐진다. 그리고 이런 겹침을 그는 문장의 불편으로 놓아두는 대신 독자의 사유 속으로 밀어넣어 떨리도록 배치한다. 그렇더라도 그의 이러한 특질은 그만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말 그만의 특징을 꼽으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드럽다는 것이다. 

  그녀의 부드러움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정말 자신의 시가 가 닿으려는 중심을 비워둔 채로 그 바깥을 잉잉거리면 저리 부드러워질까. 그에게는 그것이 "혁명"일 테지만 몇 몇에게는 고역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다 점등되는 하루를 갖고싶어 안달이다. 나도 당신들도, 목숨이 있는 것들은 모두 다! "이상한 열기로" "내벽이 까맣게 그을릴 때까지".

  그렇다면 '그을리지 않는 것들은 죽은 것이다'란  전언도 성립까? 오스카 와일드, 절대자, 시인, 그들이 면벽하고 마주보는 것이 이런 그을림의 한 종류라면, 그을음을 가졌으므로 우리들도 충분히 부드러워야 마땅하다. 다들 스위치를 올려보시라. 혁명은 그렇게 안으로부터 까맣게 그을리면서 시작된다.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물크러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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