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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작은집 이야기

테오리아2 2013. 3. 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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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집 이야기


                                                       김 태 호



  지금 나 홀로 카페에서 묵상에 잠겨있다. 아랫도리가 따뜻해지면서 온몸에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진한 커피 향에 장미 한 송이 꽂혀있는 카페에서 벽에 걸린 밀레의‘만종’을 감상하고 있다.

  우리 인간의 쾌감 중에 이보다 더 행복한 기쁨이 또 있을까. 배설의 쾌감이 바로 그것이다. 며칠동안 섭취한 음식물이 돌덩이 같이 굳어져 아무리 용을 써도 나오지 않을 때를 경험해 본 일이 있는가. 어느 환자는 우리 인간의 쾌감 중에 배설의 쾌감이 으뜸이라고 했다.


  세월의 수레바퀴를 반세기 전으로 되돌려 어린시절 시골 변소를 회상해 본다.

  아픈 배를 움켜쥐고 변소로 달리는 그 모습을 상상 하노라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 옛날 시골 변소를 경험 해 본 사람들은 다 알리라. 대부분 지붕이 부실하여 빗물이 그냥 변소에 떨어진다. 이것도 중요한 거름이기 때문에 여간 귀히 여긴 것이 아니다. 건더기 보다는 국물이 많기 마련이다. 시설이라야 나무토막을 얼기설기 묶어서 적당히 걸쳐 놓고, 중간에 투하되는 곳의 크기가 앞과 뒤가 다르게 놓여 있다. 넓은 곳은 어른들이 사용하고 좁은 곳은 아이들이 사용하는 곳이다. 먹을 것이 없을 때라 나물이고, 꽁보리밥이고 닥치는 대로 배를 채웠기에 섬유질이 많아서 그 굵기 또한 엄청났다. 갖은 용을 써 가면서 한 덩이 투하하면, 원래 물이 많은 곳이라 바로 반격이 시작된다. 엉덩이에 온통 똥물로 칠갑을 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여러 번 당하다 보면 노하우가 생긴다. 국물이 옷에 묻지 않게 하려면 아래와 같은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분절법이다. 큰 덩이를 단번에 투하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잘라서 알맞게 투하하면 반격이 없거나 적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전후 이동법이다. 한 덩이 투하해 놓고 반격해 오는 짧은 시간에 앞으로 뒤로 이동하여 반격의 사례를 피하는 것이다. 이때 주위 할 점은 뒤로 이동 하였을 때 얼굴에 반격을 당하는 수가 있으니 특단의 주의를 하여야 한다.

  다음으로는 상하 이동법이다. 얼른 투하 해 놓고는 벌떡 일어서는 것이다. 이때도 국물이 많으면 조금은 당하는 수가 있으니 주의하여야 한다. 그리고 볼 일을 다 본 후 마감 처리를 할 휴지가 문제이다. 그 당시 신문지는 최고급이고 헌 책을 뜯어 쓰는 것도 고급이다. 흔히 1년 동안 초가지붕을 묶어 두었던 새끼나 짚을 모아 두었다가 그것을 사용한다. 우리가 썩은 새끼로 뒤처리를 할 때, 이웃 일본은 뒷간 앞에다가 새끼를 양쪽에 묶어두고 볼일을 다보고 그 새끼를 가랑이 사이 두고 앞으로 죽 가면 자동으로 닦여지는 방법을 택하였다니, 역시 꾀가 많은 놈들이다. 간혹 아이들은 변소에서 용변을 보는 동안 그 짚으로 새끼를 꼬기도 했다.

  

  일전에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왔는데, 거기서는 손가락으로 뒤처리하고 물 한바가지 떠서 손 씻고 그 물로 변을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수 년 전 중국의 공중변소를 구경하고 모두 코를 막고 박장대소를 하던 기억이 난다. 거기는 도랑을 만들어 놓고 변을 보는데 칸막이가 없어 앞 사람의 변과 엉덩이를 감상해야하는 웃지 못 할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옛날에는 화장실을 통시, 정낭, 뒷간 또는 측간이라 불렀다. 뒷간’이란 어원은 ‘집 뒤에 있는 측간’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나, 어떤 사람은 엉덩이를 깐다는 뜻에서 ‘깐뒤’를 반대로 읽으면 ‘뒤깐’에서 유래되었다는 학자도 있다. 그리고 임금님의 변을 ‘매화’라고 부친 것도 아마 특별한 사람의 변이라는 뜻으로 미화해서 부르기 위함 이었으리라.

  예부터 절에 있는 변소를 해우소(解憂所)라 불렀다. 그 뜻은 ‘근심을 푸는 곳’으로 해석된다.

  해우소 이야기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 거두절미하고, 야외에서 큰 것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면, 어린 시절 산이나 들에 소 먹이를 하러 나갔다가 급히 볼일을 보고 싶을 때가 생긴다. 여기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도 분명 생활을 통한 경험의 지혜이다. 풀이 많이 자란 곳을 택하면 풀이 엉덩이를 찔러 적당치 못하다. 제일 좋은 곳은 바위가 갈라진 곳, 양 발을 둘 수 있는 자연적인 곳이 있다. 이곳이 명당이다. 그런데, 바람의 방향이 문제가 된다. 바람을 안고 자리를 잡아야 선선한 공기 마시면서 편안히 볼 일을 볼 수가 있다. 급한 김에 바람을 등지고 자리를 잡았다가는 그 고약한 냄새를 내가 다 맡으면서 끝날 때까지 참아야 한다. 또 주의해야 할 점 이하나 더 있다. 가랑잎이나, 부드러운 풀잎을 반드시 미리 준비하거나 반질반질한 돌멩이도 여러 개 준비해야 한다. 바위 틈 명당이라고 급한 김에 바로 시작하였다가는 낭패를 보기 일쑤다.

  

  이보다도 시장 통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일화는 더욱 가관이다. 이름하여, 시장 통 공동변소가 바로 그것이다. 여러 세대가 공동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청결 할 리가 없다. 배탈이라도 난 날이면 공동변소 앞에서 배를 움켜쥐고 동동 걸음으로 발을 구른 일이 허다하다. 문을 아무리 두들겨 본들 안에 든 사람은 사정을 봐 줄 리가 없다. 이리저리 허둥대다가 출입문 앞에 실례를 한 사람의 선물을 밟고 중얼거리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아주 험악한 얼굴로 입에 담지 못할 욕지거리를 하고 있다. 이유 없이 중얼거리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똥 밟았나?’라고 한다. 화장실 안의 낙서는 또 어떠하였나? 누구와 누가 이렇고 저렇고 하였다는 소문이나, 인생을 달관 한 듯한 철학적인 문구도 가끔씩은 있었다. “뒤를 돌아봐?” “옆을 돌아 봐?” “위를 봐?”“뭘 봐?”등의 낙서와 심지어 선생님의 허물이나, 좋지 못한 음해성 헛소문도 적어 놓았었다.

  

  당시 버스 주차장의 공동변소에는 요금을 받는 곳도 있었다. 급한 김에 버스 주차장에서 볼일을 보고 나왔더니 직분에 어울리는 행색을 한 사람이 손을 내 민다. 손가락으로 벽면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소변 3원, 대변 5원이라고 적혀 있다. 주머니를 뒤져 3원을 건네주고는 한 소리 한다. “작은 것 3원이고, 큰 것 5원이면 큰 거 볼 걸!”

  으슥한 골목을 지나다가 갑자기 볼 일 생기면 큰일이다. 볼일을 보기에 적당한 곳은 으레 ‘소변금지’라고 적혀 있다. 한자식으로 오른쪽에서 읽으면 ‘지금변소’가 된다. 급한 김에 볼일을 보다가 황당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소변금지’는 그래도 낭만이 서려 있다. 세태가 각박해 짐에 따라 ‘소변금지’ 대신에 큼직한 가위가 그려져 있다. 어쩐다는 것인가? 가위로 그 중요한 것을 자른다는 것인가? 가위 옆에는 공업용 미싱이 서투르게 그려져 있기도 한다. 더욱 야릇하다.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버린다는 것인가? 그곳을 박아 버리면 여럿이 곤란할 텐데......? 그래서 점잖은 집주인이 가위, 미싱그림을 다 철수하고 ‘이 곳에 볼일을 보는 사람은 개 자제분으로 취급한다.’는 팻말로 갈았더니, 다시는 볼일을 보는 사람이 없어 졌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다.

 

  오늘날은 올림픽이나 국제적인 행사의 영향으로 화장실 문화가 발달하여 어디를 가도 깨끗하고 위생적인 양변기와 현대식 비대가 설치되어 있다.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 남자 화장실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당신이 나를 깨끗이 사용하면 내가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든지, ‘남자가 눈물 말고도 흘려야 하지 않을 것은 무엇인지 아시겠죠?’라고.

  어느 음식점 남자화장실 소변기에는 파리 한 마리를 그려놓고 집중사격 하도록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휘한 곳도 있었다.

  

  지금까지 나 홀로 카페에서 그 옛날 생각에 잠겨 속웃음을 참아보지만, 글을 재미있게 쓰려고 하다보니 별 더러운 이야기도 다 쓰게 된다.

  오랜만에 쾌변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상쾌했다.






출처 : 청람수필
글쓴이 : 제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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