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시파 / 라대곤
이층을 세놓자고 했을 때 나와 집사람은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내 주장은 아이들 교육 문제가 있으니 돈을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고, 집사람은 기왕 세를 놓는 처지에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쪽을 택하자는 것이었다. 한데 복덕방에서 엉뚱한 제안이 들어왔다. 외국인이 들어오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반대를 했지만 집사람이 선뜻 허락을 하고 말았다. 나는 돈을 많이 받겠다는 집사람의 주장을 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군산은 항구이고 또 미 공군 기지가 있어서 외국인이 낯설지 않다. 한데도 내가 반대를 했던 것은 편협적이고 보수적인 내 성격 탓도 있지만 사실은 내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학교도 다닐 만큼 다녔고, 영어 공부랍시고 수년을 했는데도 어떻게 된 것이 외국인만 보면 혀가 굳어져 버렸다. 다행히 입주하는 사람들이 국제 결혼한 커플인데 어느 한쪽도 한국인이 아니어서 내 영어 실력이 들통나지는 않은 것 같아 다소 안심을 했다.
그들이 입주하는 날이었다. 내 기분을 알 리 없는 집사람이 맥주 두 병을 들려주면서 집주인이 인사를 해야 한다고 이층으로 올라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큰일났다. 단어 읽기라면 몰라도 말 한마디 건넬 수 없는 내 처지는 만약에 미군이 때려죽인다 해도 OK라고 대답을 해야 할 상황이어서 , 몸보신하겠다고 때려죽이는 인간에게 대꾸 한마디 하지 못하는 개새끼와 다를 것이 없이 비참했다.
그런데 기우였다. 걱정과는 무관하게 그날 밤 국제적인(?) 상견례가 무사히 끝난 것이다. 맥주를 마시는 것도, 낄낄거리는 것도 나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몸이 크다는 것과 노랑머리, 팔에까지 무성하게 난 털 정도였다. 이름이 존이라는 것도 알았다. 영어도 별것이 아니었다. 그날 밤 이후 마음이 편해지고 넉살까지 늘었다.
헤이 존, 하고 부르면 그도 알아듣고 웃었다. 문제는 언어가 아니라 풍습의 차이였다. 마을 사람들조차 그들의 엉뚱한 생활습관을 이해하지 못했다. 윗옷을 홀딱 벗어버린 채 이층 난간에서 일광욕을 하면, 마을 사람들은 눈을 가리면서 보기에도 민망하다며 외국인에게 방을 빌려준 것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미군 부부에게 동방예의지국의 법도를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난감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덕분에 우리 부부까지 다툼질이 많아지면서 존이라는 미국인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일요일 오후였다. 딱히 갈 곳도 없어 선풍기 앞에서 뭉그적거리는데 존이 반바지 차람으로 내려왔다. 가뭄으로 수돗물이 나오지 않자 호스로 지하수를 이층까지 끌어올리다가 갑자기 존이 쥐고 있던 고무호스가 밀리면서 거실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별것도 아닌 일에 알 수 없는 열이 확 받쳐 올라왔다.
"야, 존! 존 조심해라." 끓어오른 감정을 애써 감추면서 점잖게 나무람을 했다. 하지만 존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이해할 수도 있었다. 존도 한국말을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고라도 해주려고 조금 더 큰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도 녀석이 쳐다보기는 커녕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순간 나는 말할 수 없는 분노가 폭발하고 있었다. 어른이 말을 하면 순응을 하는 것이 동방예의지국이 아닌가. 나는 더는 참지를 못하고 한달음에 쫓아가면서 삿대질과 함께 큰소리로 고함을 질러댔다.
"야, 임마! 물 좀 조심하란 말이야!" 내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존이 나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험악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더니 빠른 소리로 꽥하고 고함을 질렀다.
"아자씨, 임마 하지 마요. 시파!"
순간 나는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기가 탁 막히고 말았다. 지금까지 녀석은 우리말을 다 알아듣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능청스러운 놈.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허탈감이 몰려왔다. 놈에게 농락당하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이제 체면이고 창피하고를 떠나서 놈과 한 지붕 아래서 살 수가 없다는 오기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마음만 더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