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시저리 꽃 / 이경수
시저리 꽃 / 이경수
연우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논다. 그러다 지루했는지 또 어디로 가고 없다. 걸음마를 시작하고 돌이 가까워지면서 집안 곳곳을 혼자서 곧잘 돌아다닌다. “연우야” 하고 부른다. 어디선가 “으음” 하는 소리가 난다. 읽던 책을 그대로 두고 “연우가 어디 있나?” 하면서 소리 나는 쪽으로 간다. 연우는 얇은 제 이불을 머리에 뒤집어쓰느라 정신없다. 가까이 다가가서 다시 한 번 부르니 이번에는 뒤집어 쓴 이불을 젖히느라 또 바쁘다.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저 혼자 숨바꼭질을 한다. 새 하얀 앞니 두 개를 드러내고 벙글거리는 아이를 꼭 껴안는다.
요즘 맞벌이하는 어미를 대신해서 손자 손녀를 돌보는 할머니가 적지 않다. 그저 잠깐 봐 주는 게 아니라 반 어미노릇을 해야 한다. 주변에도 이처럼 손자를 돌보는 친구가 여럿 있다. 나는 이들에게 좋아하는 일이나 하면서 편하게 지낼 나이에 왜 사서 헛고생하느냐며 핀잔을 주곤 했다. 그러던 내가 지금 외손녀 연우를 맡아 돌보면서 보란 듯 자랑까지 늘어놓는다.
연우가 나팔꽃처럼 입을 활짝 벌리고 까르르대면 나는 무엇이든 다 한다. 마른 무릎으로 함께 기어 다니기도 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비틀거리며 숨바꼭질도 하며, 얼굴을 찌그러트려 보이기도 한다. 아, 이것은 손녀를 위한 할미의 재롱이다. 그러면서 내가 어미인 듯 착각을 한다. 이럴 때마다 철없이 피는 시저리 꽃이 생각난다.
어느 날 고향이 논산이라는 박 선생이 “우리 고향엔 시저리 꽃이 있어요.” 했다.
“시저리 꽃?”
“예, 봄꽃이 가을에 또 피면 철도 모른다며 할머니들이 그렇게 불러요.”
순간 나는 시집에서 자주 듣던 사투리 하나가 떠오르면서 웃음이 터졌다.
“그래, 철도 모르고 피니….” 불시 개화현상을 보고 재치 있는 할머니들이 붙인 별명이리라.
요즘은 시골 큰집에서도 그 사투리를 거의 들을 수 없지만, 예전에 부엌에서 일을 할 때면 형님들이 주고받는 이야기 가운데 “그 사람 시절이구먼.” 또는 “하는 짓이 시저리라니까.” 하면서 유독 많이 쓰던 말이다. 처음 듣는 사투리지만 나는 앞뒤 말이나 억양으로 그 뜻을 알아차렸다.
시절 또는 시저리란 충청도 사투리로 한자 時節(시절)과 같은 낱말이며, 시기와 절기도 모르고 날 뛰는 짓 즉 어리석은 짓이나 바보짓 하는 사람을 말한다.
가을이 깊어지자 여기저기서 시저리 꽃 소식이다. 지난 여름은 정말 덥고 길었다. 좀체 물러날 것 같지 않은 더위를 태풍 두어 개가 훑고 지나갔다. 거센 비바람에 나뭇가지가 꺾이고 잎이 다 떨어지다시피 했다. 유난스런 날씨에 나무들이 애를 먹는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곳곳에서 가을에 봄꽃이 피어 사람들의 눈길을 모은다고 했다. 목련과 홍매 그리고 배꽃이 피었다. 어느 시인은 가을 하늘 아래서 팝콘 터지듯 터지는 벚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는 것이다.
나도 낙엽이 쌓이던 어느 날 산책길에서 시저리가 된 개나리꽃을 만났다. 무심히 지나치면 보이지도 않을 몇 송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림자까지 노랄 것 같던 봄과는 달리 물기 잃은 가지로 겨우 밀어 올린 듯 꽃은 본래보다 옅은 빛깔에 작고 연약해 보였다. 무엇이 이 여린 봄꽃을 가을에 피게 했을까. 바람일까, 햇볕일까 아니면 봄비처럼 내린 가을비일까. 다른 것보다 어리숭하여 변덕스런 날씨에 그만 속아서 철없이 꽃망울 몇 개 터트리고 말았지 싶다. 부끄러워 차마 활짝 펴지 못하고 오그린 채 찬바람 맞고 있는 게 안쓰러워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동안 마주했다.
개나리는 가지에 물을 올려 꽃봉오리 터트리면서 봄에 느꼈을 환희를 다시 한 번 맛본 걸까. 추운 겨울 견디며 봄을 준비하려면 여느 때보다 힘겨울 텐데, 이 또한 삶을 이어주는 다른 모양의 징검돌이란 것을 안 걸까. 작은 꽃 몇 개 달고 있는 모습에서 떨림과 차분함이 번갈아 느껴졌다.
연우가 내 품을 빠져나간다. 뒤뚱거리며 걷다 넘어지다 하면서 노는 모습을 보다가 업어주고 싶은 마음에 포대기를 들고 가서 “어부바”한다.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등에 오른 아이의 보드라운 감촉이 참 좋다. 서성이며 묵은 동요를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부른다. 아이는 잠들고 나는 못 다 부른 동요를 몇 곡 더 흥얼흥얼댄다. 내 아이를 키울 때 자장가 삼아 부르다 묻어둔 것들이 봄풀처럼 파릇파릇 살아난다. 달밤에 노루가 달려와 마시던 옹달샘 물이 내 가슴으로 흘러 와 고인다. 그러면 시기와 절기도 모르고 철없이 꽃봉오리 하나 밀어 올린다.
나는 연우의 계절에 핀 한 송이 시저리 꽃이다.
≪계간수필≫로 등단(2002년).
≪토방≫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