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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수필]?선녀 증후군?(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2) / 신현식

테오리아2 2013. 1. 1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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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 증후군 / 신현식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2)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인기는 대단했다. 특히 여성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아무튼 그들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그런데 왜 여성들은 주인공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의 불륜 이야기에 그토록 열광한 것일까?

두 사람의 관계는 틀림없는 불륜이다. 킨케이드는 홀아비이지만 프란체스카에게는 엄연히 남편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 의외인 것은 여자 쪽에서 자꾸만 그렇게 만들어 갔다는 것이다. 배우자가 아닌 이성에게 마음을 품는 것조차 간음이라고 마태복음 5장 28절에 나와 있지 않은가.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프렌체스카는 왜 그랬을까?

여자는 메디슨 카운티의 외딴집에 사는 농부의 아내다. 라디오를 틀어 놓고 부엌일을 하고 있던 중에 자동차가 집 앞에 멈추어 선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로즈먼 다리로 가는 길을 묻는다. 이것이 그들의 첫 만남이다.

남자가 잡지의 표지 사진을 찍으러 왔다니 사진작가라 짐작한다. 이십여 년이나 한적한 시골에 박혀 사는 자기와는 달리 이곳저곳을 마음껏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나도 저 사람처럼 자유로워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마침 남자가 지붕 덮인 다리의 위치를 물으니 알려주려고 동행을 한다. 가는 길에 얘기를 나누어 보니 서로 뜻이 통한다. 더구나 자기가 태어난 이탈리아 고향 마을에도 가보았다고 하지 않는가. 단지 풍광이 좋아 예정에도 없던 그곳에 내렸다고 하니 얼마나 낭만적인 사람인가.

 간단한 사진 몇 장을 찍고 남자가 집까지 데려다 주는데, 그냥 보내기가 섭섭하여 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했을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더욱 정이 가 저녁까지 먹고 가라고 했다. 남자가 돌아가자 빈 집이 더욱 썰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내일 촬영한다는 다리로 ‘언제든지 오라’는 의미심장한 메모를 붙이려 달려갔을 것이다.

이런 경우와 비슷한 김승옥 원작의 <안개>라는 영화가 있었다. 시골 학교 여선생과 도시 남자의 만남을 그린 영화였다. 그녀는 저녁을 같이 먹자는 지방 유지의 부름에 나간다. 여러 사람들 속에 낯선 남자가 한 사람 와 있다. 그 근사한 남자는 서울의 큰 제약회사의 전무라는데 휴가차 고향에 왔다고 한다.

술자리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캄캄한 시골길이었다. 집까지 바라다 준다며 같이 걷던 남자는 이곳이 좋으냐고 묻는다. 여자는 갑갑해서 미칠 것 같다며 서울로 데려다 달라고 애원한다. 처음 보는 남자에게 왜 그런 의미심장한 부탁을 했을까. 그 부탁이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 말이다.

프렌체스카도 처음 이민을 왔을 때엔 원대한 꿈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일이 마음먹은 대로 다 되든가. 시골학교의 선생님이 되고 결혼을 하게 되자 꿈을 접고 시골에 눌러 앉게 되었을 것이다. 남편은 재미는 없지만 그런대로 성실한 농부다. 아이를 낳고 농사일이 바빠지자 교사직을 그만두고 집안 돌보기에 파묻혔을 것이다. 그리고 늘 반복되는 권태로운 삶이 계속 되었을 것이다.

자식들 키우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낙이었는데 이젠 아이들도 다 컸다. 그 남자가 나타난 날 아침 식구들은 모두 박람회구경을 가고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홀가분함을 느끼는 순간 자유롭고 낭만적인 남자를 만났으니 혼이 빠져 부적절한 관계까지 가고 만 것이다. 남자가 같이 떠나자고 하지만 마음을 추스른 그녀는 결국 가지 않겠다고 한다.

영화 ‘안개’의 여자도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서울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시골학교의 음악선생이 되었을 것이다. 친구들은 모두 명문가로 시집갔거나 유학을 갔는데 줄도 운도 없는 그녀는 고리타분한 시골에 있는 것이다. 자포자기에 빠져 있는 순간, 능력 있는 남자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곳을 벗어나려 그런 부탁을 했을 것이다.

여성들은 어딘가로 자유롭게 떠나고 싶은가 보다. 수필가 전혜린도 먼 곳에의 그리움을 그렇게도 갈망하지 않았던가. 황진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선비 김경원(金慶元)도 바람처럼 떠도는 부운거사(浮雲居士)였다. 전래 동화 <나무꾼과 선녀> 에서의 선녀는 아이를 둘 낳고도 미련없이 하늘로 훌훌 날아갔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에서도 정부 고관의 아내로 풍족한 생활을 하지만 청년 장교에게 달려간다.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도 남편과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아내가 어느 날 느닷없이 새 인생을 찾겠다며 집을 나간다. <로마의 휴일>에서는 부러울 것 하나 없는 공주가 갑갑함을 이기지 못하고 뛰쳐나간다.

아무래도 여성들의 의식에는 선녀처럼 어디론지 훌쩍 떠나려하는 선녀 증후군이 내재된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젊지도 않고, 핸섬하지도 않고, 고물 트럭을 몰고 온 남자에게 프란체스카는 왜 그토록 호의를 보이며 매달렸겠는가.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바로 이 선녀 증후군에 불을 지폈고, 대리만족을 느낀 여성들이 그토록 열광한 것이 틀림없다.

 

계간《문장》2012 가을

출처 : 신현식의 수필세상
글쓴이 : 에세이 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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