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박근혜 수필 그리고 낯 뜨거운 비평
박근혜 수필 그리고 낯 뜨거운 비평
《현대문학》은 2013년 9월호에 「꽃구경을 가는 이유」등 박근혜의 수필 4편을 실었습니다. 이와 함께, 영문학자이며 문학평론가인 이태동(74, 서강대 명예교수)의 비평도 실었습니다. 먼저 한 작품을 읽어볼까요.
꽃구경을 가는 이유
박근혜
‘오늘은 내 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것은 일평생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견지하고자 하는 그의 방편인 셈이다.
어쨌든, 어느 날엔가는 그 가정이 실제와 맞아떨어지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앞으로 오래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있겠지만, 꽃다운 나이에 꽃처럼 지는 애처로운 사연도 듣고 보아 온 우리들이 무엇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그 누구도 정확히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넋두리 같은 쓸데없는 소리일까? 그러나 이같이 확실한 진리는 없다. 이 세상에 온 우리 모두는 반드시 언젠가는 이승을 떠나야만 하며 그 때가 언제인지는 그 누구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이 분명한 진리가 인간의 마음에 큰 경종을 울리면서 과연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길을 제시해준다.
그런데, 삶을 애기하기도 바쁜 세상에 지금 왜 죽음을 말하고 있는가. 꽃피는 계절을 기다리고, 피는 꽃을 반가워하며, 꽃구경하러 지방 나들이까지 가게 되는 이유는 그 꽃들이 이제 곧 지기 때문이다. 계속 영원히 피어 있는 꽃이라면 소중히 감상할 맛도, 아쉬움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도 반드시 끝이 있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 종점은 하루가 지나면 그만큼 가까이, 그러다가 문득 다가오는 것이기에. 낭비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함부로 빈둥빈둥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생의 끝이 있음을 잊지 않음으로 인해, 적어도 때때로 생각해 봄으로써 허무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무하지 않게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영원한 것과 순간적인 것을 가려 낼 수 있는 분별력’이야말로 허무하지 않은 삶으로 이끌어주는 등불이 되며, 생의 종착점에서 울려오는 종소리야말로 이 분별력을 일깨워 주고 그 깨달은 바대로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의지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다 좋다’는 속담이 있다. 다시 말해서 끝이 만일 나쁘다면 그 전에 좋았던 것이 다 소용없다는 얘기도 된다. 죽음을 맞는 순간은 살아온 일생에 비하면 극히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 마감의 순간에 스스로 돌아보는 일평생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그 인생은 값어치 있는 것이 되기도 하고, 완전 실패요 허무한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긴 역사의 흐름과 비교해 볼 때,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 - 이것이 우리들의 공통된, 예외 없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이렇게 머물다 가는 나그네가 그 마지막 순간에 가장 평화스럽고 행복하고 후회 없는 마음으로 생의 여정을 돌아보며 마감할 수 있도록, 바로 그 심정으로 우리가 인생을 바라보고 그리 되도록 걸어갈 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장 값있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수필집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1998)
이태동 교수가 쓴 비평 몇 구절을 인용하면,
1> 박 대통령의 에세이가 "출간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크게 조명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한국 수필계가 세계문학 수준에서 에세이 문학 장르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2> "박근혜의 수필은 우리 수필 문단에서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일상적인 생활 수필과는 전혀 다른 수신(修身)에 관한 에세이로서 모럴리스트인 몽테뉴와 베이컨 수필의 전통을 잇는다고 할 수 있다."
3> “그의 에세이의 대부분은 우리들의 삶에 등불이 되는 아포리즘들이 가득한,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진주와도 같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4>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부조리한 삶의 현실과 죽음에 관한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의 코드를 탐색해서 읽어내는 인문학적인 지적 작업에 깊이 천착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성이 있는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므로
5> "우리 문단과 독자들이 그의 수필을 멀리한다면 너무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도 비평했습니다. 또한
6> “박 대통령의 에세이가 정치인이라는 무의식적인 편견과 함께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지적으로 풍요함은 물론 높은 수준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7> “이런 사실을 정직하게 알리는 것이 우리 수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편집후기에서는
“삶과 사물을 통한 통찰과 냉철한 사유, 지적 체험 등이 수반되어야 할 에세이 문학에 대한 인식부족을 필자는 ‘정情의 문학’에 그치고 있는 한국 수필 문학의 한계로 지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궁극적인 자기인식에서 출발한 수신修身에 관한 내면의 울림을 주는 박근혜의 수필 「꽃구경을 가는 이유」외 세 편을 특별히 여기에 소개한다. 그의 비극적 체험에서 비롯했을 부조리한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실존에 관한 성찰, 그 극복에의 의지들은 철학적 사유와 치열한 독서 체험을 통한 삶의 한 방식으로서의 글쓰기에 주력되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절제된 언어로 사유하는 아름다움의 깊이를 보여주는 문인 한 개인을 넘어, 한 나라의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이다. 에세이 문학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가지고 쓴 이 비평이 한국 에세이 문학의 재발견과 더불어 문학을 보는 진정한 시선 확장에 기여될 것임을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몇 문인의 반발과 수상거부 등 움직임이 일자 《현대문학》은 사과 공고를 내고 관련자 몇 명이 사표를 냈지요. 보수언론이 쉬쉬하는 바람에 파문은 가라앉았지만, 우리 사회 식자(識者)들의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접하고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비평이 낯 뜨겁지 않습니까. 한편으로는 분노가 치밀지 않습니까. ‘박비어천가’에다, 한국 수필계와 수필가들을 깔아뭉개는 비평, 최고 권력자 박근혜와 글쟁이 박근혜를 구별할 줄 모르는 비평, 그것도 당대의 석학이라 일컫는 이태동 교수가 그저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를 나열한 글을 놓고 이런 비평을 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문단에 ‘주례사비평’이 만연하는데, 한국 문단의 치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정치 성향과 한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이건 아니다’ 싶어 잠시 주절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