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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민들레/이상렬(좋은생각.2014.2)

테오리아2 2014. 3. 2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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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이상렬/좋은생각(2014.2월호)

 

 

 

  어머니가 방 한 칸짜리 집으로 이사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신 유일한 재산인 집 한 채, 그마저도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처분하고 말았다. 장성했지만 가난한 작가이자 목사인 아들은, 어머니의 땀과 눈물로 닦아 놓은 영혼의 터와 같은 집을 끝끝내 지켜 주지 못했다.

  혼자 사는 어머니에게 이제서야 들렸다. 좁은 방에 화분으로 가득하다. 세간 살림 들어갈 곳도 없는데 그런 것 죄다 버리지 않고 왜 가져왔느냐 해도 “꽃을 어떻게 버려?” 하시는 어머니, 그 얼굴에는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가 가득했다. 무심한 아들,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시는지 처음 알았다.

  어렴풋이 유년 시절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어머니와 골목을 걸었다. 나란히 가던 어머니가 뒷걸음질하며 물러났다. 돌아보니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인가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미동이 없어 곁으로 갔다.

  어머니의 시선이 머문 곳은 길가에 핀 작은 민들레였다. 한참 만에 “아~ 곱다.” 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놀랐다. 어머니는 외양간에서 소 키우시고 밭에서는 일만하셔서 그런 감정은 없는 줄 알았다. 그때 어머니의 얼굴에서 오늘처럼 소녀의 얼굴을 보았다.

  돌이켜 보니 지금껏 어머니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철딱서니 없던 시절, 고개 빳빳이 세우고 세대차이 운운하며 내 주장을 펼칠 줄 알았지 지금 내 나이에 시동생 여섯 있는 집에 시집와 오목가슴 치며 산 어머니의 세월은 몰랐다. 내 청년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두려움은 알았지만, 중년의 나이에 남편을 잃어 혼자되신 어머니의 외로움은 몰랐다.

  늘 강철 같았던 어머니였지만 당신도 꽃을 보며 앳된 표정을 짓는 소녀였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집을 나섰다. 그 옛날 유년 시절처럼 어머니와 나란히 골목을 걸었다. 어머니는 나지막한 소리로 한숨 섞어 말씀하신다. “하루 더 있다가지 않고?” “돌아오는 명절에 올게요. 어서 들어가세요.” 점점 멀어지는 어머니를 남겨 두고 골목 끝을 돌았다. 담벼락 밑에 민들레 한 송이가 피어있다. 울컥 가슴에서 뭔가가 올라왔다. 하마터면 다 큰 어른이 엉엉 울며 뒤돌아 뛰어갈 뻔했다. 지금 이 순간 몸서리치게 외로워하고 있을 어머니에게로.

 

 

출처 : 이상렬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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