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모닥불 속의 개미들 외/솔제니친
활활 타고 있는 모닥불 속에 썩은 통나무 한 개비를 집어 넣었다. 통나무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타오르자 나무통에서 개미들이 떼를 지어 쏟아져 나왔다 한 무리가 통나무 뒤쪽으로 달리다가 불길에 휩싸여 타 죽어 갔다.
나는 황급히 불붙은 통나무를 모닥불 속에서 끌어내었다. 생명을 건진 개미들의 일부가 모래 위로 달려가고, 더러는 소나무 가지 위로 기어 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미들은 좀처럼 불길을 피해 달아나려 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불길을 피해 나갔던 개미들도 방향을 바꾸어 다시 통나무 둘레를 빙빙 맴돌기 시작했다. 그 어떤 힘이 그들을 내버린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일까.
많은 개미들은 활활 타오르는 통나무 뒤로 다시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는 통나무에 붙어서 그대로 타 죽어 가는 것이었다.
<샤릭>
우리집 정원 옆에서 옆집 소년이 '샤릭'이라고 하는 작은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이 개는 새끼 강아지 때부터 쇠사슬에 묶여져 길러졌던 것이다.
어느 날 나는 고소한 냄새가 제법 풍기는 닭뼈를 '샤릭'에게 주려고 정원으로 가지고 나갔다. 마침 그때 소년은 마당을 뛰어다니게 하려고 '샤릭'을 풀어 놓았다. 마당엔 함박눈이 수북하게 깔려 있었다. '샤릭'은 깡충깡충 토끼처럼 뛰면서 앞발을 높이 쳐들고 서기도 하고, 더러는 코를 눈 속에 쳐박기도 하면서 신나게 정원의 구석구석을 뛰어다녔다.
복슬 강아지 '샤릭'은 내게 달려와서 반갑다는 듯이 몸을 내 다리에다 부벼대며 뛰어오르기만 할 뿐, 내가 주는 닭 뼈다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다시 눈 속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마치 '샤릭'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따위 닭 뼈다귀는 필요치 않아. 내게 필요한 것은 오직 자유 뿐이야."
<호흡>
간밤에 보슬비가 내렸다. 지금도 하늘엔 비구름이 떠가며 이따금 비를 가볍게 뿌리고 있다. 나는 꽃이 다 시들어 가는 사과나무 밑에 서서 심호흡을 하고 있다. 비가 오고 난 뒤라서 사과나무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식물이 축축한 물기를 머금고 있다.
대자연의 기운에 흠뻑 취하게 하는 이 감미로운 향기의 묘미를 어찌 이 무딘 붓으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나는 이 대기를 가슴 가득히 들이키고 내쉬고 하면서 가슴속 깊숙이 그 향기를 느끼고 있다. 더러는 눈을 뜬 채 때로는 살짝 눈을 감은 채.
모르긴 하지만 아마도 이런 것을 가리켜 자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옥이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뭇 자유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자유, 유일한 자유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도 아무리 향기 좋은 포도주도 달콤한 여자의 입술도 이 신선한 대기보다 더 감미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이곳이 비록 짐승들의 우리 같은 5층 건물에 짓눌리고 있는 뜰이긴 하지만 꽃 향기와 물기를 머금고 있는 신선한 자연의 기운이 넘치고 있지 않은가
따발총을 마구 쏘아대는 듯한 모터 사이클 소리도 개가 짖어대듯이 시끄러운 전축과 라디오 소리도 더 이상 나에게는 들려오지 않는다. 나는 비 내린 뒤의 사과나무 밑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다. 이렇게 숨을 내쉬고 있는 한 아직은 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