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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떨켜-2013년 현대수필 봄호

테오리아2 2013. 6. 9.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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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켜/김희자

 

 

 공원 벤치에 앉아 이슥한 가을에 취해 있다. 나뭇잎들이 마지막 혼을 태운다. 버려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아는 순간 나무는 가장 눈부시게 물이 든다. 잎을 어루만지며 지나가는 바람의 옷자락에 깊은 가을이 배어 있다.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던 울긋불긋한 나뭇잎이 하나 둘 셋 조막손을 놓는다. 방하착(放下着). 제 몸의 전부였던 것을 내려놓으며 나무는 생의 절정에 달한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새로운 계절을 만날 채비를 한다. 앞날 위해 본성을 비우는 초연한 나무들은 여름 내내 키워온 이파리를 떠나보낸다.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겨울나기를 위한 기지(機智)이다. 낙엽이 질 무렵이면 잎 꼭지가 붙은 가지에 떨켜가 생긴다. 이 특이한 세포층은 잎의 양분을 줄이고 수분이 통하지 못하게 하여 잎을 지게 만든다. 잎이 떨어지고 나면 그 자리를 보호하여 또 다른 잉태를 꿈꾼다. 떨켜로 인해 잎이 저무는 것은 사람의 은퇴나 완경(完經)과도 다를 바 없다.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며 기꺼이 자신을 포기하는 나무를 보니 완경에 이른 언니가 쪽빛 하늘에 떠오른다. 

 나보다 세 살을 더 먹은 언니는 지난봄부터 폐경기에 들었다. 여자들은 생리가 오락가락하는 오십 세 전후에 갱년기 장애를 겪는다. 갱년기는 난소에서 더 이상 배란시킬 난자가 없어져 생기는 증후다. 가임기에 있던 여인이 폐경에 이르렀으니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고초를 겪는 언니를 위해 주말마다 B도시로 가는 열차에 올라탔다.

 몸에 변화가 생기니 자연 감정에도 변화가 오는 것 같았다. 언니는 평소 빈혈로 고생을 하던 터라 갱년기 증세에 유독 민감했다. 기분이 만만하게 좌우되고 몸이 화끈거리며 땀이 난다고 이불을 걷어찼다. 두통이 일고 우울증으로 기운이 딸려 눕기만을 자청했다. 늘어지는 언니를 위해 영양주사를 놓아주고 속절없이 슬픈 마음도 달래주었다. 증세가 지속되던 육 개월 동안 장애를 겪었다. 그 누구도 언니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없었지만 피붙이들의 다정한 위문이 갱년기를 받아들이게 했다. 영양보충도 요긴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로서 자연스런 변화를 시인하며 방하착(放下着)을 해야 했다.

 갱년기(更年期)에서 '更'은 '다시' 이외에도 '바뀌다, 새로워지다, 고치다'의 뜻을 지녔다. 어쩌면 갱년기는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나이가 되었으니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받아들이라는 지침서 같은지도 모른다. 지천명이 되면 인생의 이치를 바로 알고 또 다른 내일을 위한 준비 또한 필요함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희끗희끗 머리털이 세는 반백에 이르면 투정부리던 푸른 객기도 어르고 달래며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나무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나무가 떨켜를 만들지 않고 버틴다면 단풍은 얼어 죽을 수밖에 없다. 사람 역시 매한가지다. 생에 대한 충분한 준비 없이 무조건 붙들고 있으면 추해 보인다. 내려야 할 때 내려놓지 않으면 오히려 쓰라리다는 것을 언니는 호되게 경험했다. 떨켜가 나무와 나뭇잎을 보호하듯 사람도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나이 들어야 병을 얻지 않는다. 쉽게 내려놓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떨켜를 보며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나무. 그래서 단풍은 곱다.

 낙엽은 스스로 버림으로써 얻는 나무들의 생존 전술이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한 양분을 식물이나 다른 동물에게서 얻고 필요 없는 것은 몸 밖으로 배설한다. 반면 나무는 자신이 살기 위해 필요한 양분을 만드는 부분이 노화하면 몸 자체를 버린다. 낙엽이나 마른 가지는 식물의 배설 작용으로 버려지는 것과 진배없다. 나뭇잎을 떨어뜨리기에 앞서 잎에 있는 양분의 반을 줄기로 이동시켜 잎이 지게 만드는 것이 떨켜이다.

 저무는 잎은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것이 아니다. 우수수 지는 낙엽에도 우리네 인생처럼 준비된 지혜가 있다. 낙엽 지는 순서는 숲의 가장자리나 높이, 바람의 세기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먼저 돋아난 잎이 가장 늦게까지 붙어 있고 제일 늦게 돋아난 나뭇잎이 제일 먼저 떨어진다. 줄기의 안쪽부터 낙엽이 지기 시작하여 꼭대기의 잎이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떨어진다. 낙엽은 그렇게 빛나는 임종을 마치며 다음생의 거름으로 돌아간다. 잎이 진 잎자루에는 떨껴가 생기고 아프지만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빈 가지로 남는다. 이처럼 가을은 나무들이 마지막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새 삶을 위해 정리하는 계절이다.

 사람들은 떨켜 없는 나무를 자아가 강해서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유한다. 떨켜가 없는 밤나무나 참나무의 나뭇잎은 갈색으로 변해 끝까지 나무에 붙어 있다. 그러다 늦가을의 찬바람에 하나, 들씩 지고 만다. 떨켜를 만들지 않고 악착같이 버티다 떨어지는 모습은 초라하고 추하다. 떨켜가 있어야 가지와 잎을 보호하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오십 고개를 코앞에 둔 나도 머지않아 언니처럼 폐경에 이를 것이다. 나무가 떨켜를 만들어 자기를 보호하듯 나 또한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 누구나 인생의 가을은 찾아들기 마련이다. 화려하고 울울창창한 여름날에 대한 미련은 누구나 갖지 않을까. 갱년기를 겪는 언니를 보며 느낀 바가 많다. 훗날 내게도 찾아들 완경을 넓은 가슴으로 자연스레 들이고 싶다. 온전하게 비울 때 마음은 자유로워진다. 일몰 무렵 소멸을 꿈꾸는 노을에 나를 내맡기며 비우는 연습을 하고 싶다.

 바람 한 점 지나가자 잎들이 앞 다투어 낙하를 한다. 가을 끝자락에서 이제 남은 것은 나무들이 겨울을 잘 견뎌내는 일이다.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나무가 새싹을 틔워 새로운 삶을 시작하듯 언니 또한 새롭게 주어지는 몸의 변화와 환경에 적응하리라 믿는다. 나도 이 가을 끝에서 아집과 번뇌, 세상에 대한 미움과 원망 같은 잎들을 버리고 싶다. 용기와 결단이라는 떨켜를 만들어 부질없는 사랑과 욕망에 연연하지 않고 빈가지로 남고 싶다. 내 생각의 가지에 새로운 움이 돋을 따뜻한 봄날을 그리며 가을 벤치에서 일어선다.

 

<2013년 현대수필 봄호>

 

 

출처 : 수필사랑
글쓴이 : 김희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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