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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구일보>우산 기울기를 보면 사랑이 보인다.

테오리아2 2014. 3. 24.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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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기울기를 보면 사랑이 보인다.

 

 

이상렬<대구일보/ 에세이 마당/ 2013.12.3>

 

 

 비 내리는 날, 버스 승강장에서부터 딸아이와 우산을 쓰고 집까지 걸어온 적이 있다. 거실에 들어서서 어깨에 묻은 물기를 털고 있는 나에게 딸아이가 말을 건넨다. “왜 아빠 어깨는 다 젖었어?” 이제 중학생이 된 딸, 뭔가를 알만한 나이인가 보다. 입 꼬리를 실룩이며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한 우산 아래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는 장면 속에 서로의 마음이 보인다. 엄마와 아들이라면 아들 쪽으로 우산이 기운다. 연인 사이는 누구랄 것 없이 서로를 향해 우산대를 민다. 자연스럽게 균형을 이룬다. 보기만 해도 아름답다. 그럼, 이런 장면도 있을까. 내리는 비 한 방울이라도 덜 맞으려고 자기 쪽으로 우산대를 잡아당기기에 여념이 없는 장면, 부부사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 우산이 기우는 만큼 사랑의 무게도 그쪽으로 기운다. 우산이 어디를 향해 기우느냐에 따라 누가 누구를 더 사랑하고 있느냐가 보인다. 상대를 아끼는 마음이 크면 내 어깨가 비에 젖는 것쯤이야 문제될 것 없다. 옆 사람의 어깨에 한 방울의 비라도 맞지 않게 하기 위해 서늘한 물기에 제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 실로 넓은 어깨를 지닌 자다.
 우리네 인생사도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어깨가 넓은 사람이 더 큰 고통에 노출된다. 타인을 위해 짐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깨가 넓다는 것이 단지 덩치가 크다는 말은 아닐 게다. 그것은 마음이 넓다는 말이다. 마음의 그릇이 크면 상대방의 아픔이 보인다. 겨울에 내리는 비가 얼마나 차가운지, 지고 가는 인생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상처 입은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를 안다. 그래서 그의 고통을 감당하기 위해 기꺼이 제 어깨를 내어준다.
 이것은 진정 큰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성서에 이런 말이 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는 말이다. 종지로는 큰 대접을 결코 담을 수 없는 법이다. 오직 큰 그릇이 작은 그릇을 담을 수 있다. 작은 자의 약점은 큰 자가 담당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작은 자의 약점은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큰 자가 담당해야 하는 몫이다.
 부모는 아이의 철부지 행동을 다 받아 준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모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큰 자다. 아이가 부모의 마음을 다 이해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비가 마구 쏟아지는 날 우산 속에서도 해맑게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 엄마의 어깨가 비에 젖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가 없다. 자신이 엄마가 되기 전에는 말이다. 나 또한 저절로 우산이 딸에게로 기울어지는 부모의 마음을 뼈저리게 알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어찌 우리가 부모에 대고 새삼 사랑의 깊음을 논할 것인가. 가슴이 도둑맞은 것 같이 텅 비어 허한 날이면 넓은 어깨 아니, 넓은 가슴을 지닌 당신이 그립다.
 이런 마음을 닮은 자는 우리 주변에 꼭 있다. 각박한 세상에 지하철 안에서 벌떡 일어나 어르신께 자리 양보하는 젊은이, 다투었을 때 먼저 미안하다 말 걸어 주는 사람, 무거운 가방 들고 있으면 슬쩍 옆에 와서 들어주는 사람, 인도가 없는 찻길 안쪽으로 걷게 하고 이륜차가 지나가면 몸을 돌려 막아주는 사람, 이 삭막한 도시에도 이런 사람 여전히 많이 산다. 언뜻 보면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이런 자가 진정 큰 자다. 사랑의 대가다.
 지난 주 첫눈이 내렸다. 누가 더 많이 사랑하나 사랑지수를 확인할 수 있는 법은 간단하다. 눈 오는 날, 그 사람과 함께 하나의 우산을 써보라. 그리고 어느 쪽으로 기우는가를 보라.
어떤 일이 있어도 상처받지 말라. 내가 먼저 옆에 있는 그를 위해서 하늘 향해 어깨를 비워보라. 어깨가 시려올 때 쯤, 가슴에 뭉클한 뜨거움 하나를 느끼게 될 것이다.

 

 

 

출처 : 이상렬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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