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대구의 봄은/ 상희구
대구의 봄은/ 상희구
대구의 봄은
칠성시장에 제일
먼저 찾아온다
칠성시장의 봄은
칠성시장 채소전에서
시작는다
배? 날씨는
아즉 칩은데
발씨로 불노(不老), 서촌(西村)
쪽서 쑥갓, 아욱이
들왔단다
중리(中里) 날뫼 쪽서
햇미나리, 정구지가
들오고
하빈(河賓) 동곡(東谷)서는
시금치, 건대가
들오고
경산(慶山) 압량(押梁)서는
낭개 가지가 들오고
청도(淸道) 풍각(豊角) 각북(角北)
서는 풋고치, 오이가
들왔다
대구에 봄이 들어오는
초입인 파동(巴洞)의 용두방천(龍頭防川),
앞산 안지래이 쪽은 봄이 안주
뻐뜩도 않하는데
칠성시장에는 발씨로
봄이 난만(爛漫)하다
- 시집『大邱』(황금알,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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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에서 고향까마귀만 봐도 반가운 것이 숨길 수 없는 우리네 정서라고 했다. 타향에서 고향사람 만나 허리끈 풀어놓고 부담 없이 주고받는 고향 사투리는 그 자체로 따스함과 정겨움을 불러일으킨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저마다 간직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영혼의 위안을 찾게 된다. 사투리는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내 존재의 근원으로 언제 들어도 한 아름의 인간미가 묻어있어 일약 삶의 활력을 가져다준다. 슬슬 고향 동네가 생각나고 고향의 옛적 친구가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 고향이 점점 낯선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고향의 모습이 변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고향으로부터 오래 멀리 떠나 살다보면 자기 자신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낯설음이 더해지는 것은 그곳을 지키던 벗들과 가족친지의 모습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있음에도 이유가 있다. 한편으론 그럴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져만 간다. 지난시절 우리의 유행가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말이 고향인데, 요즘 젊은이들의 노래에서는 고향이라는 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래저래 희미해져가는 옛날과 고향의 그리움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시집이 상희구 시인의 ‘大邱’다.
‘大邱’는 대구출신 상희구 시인이 대구의 옛 풍경을 사투리로 풀어낸 연작시집이다. 1942년 대구 출생인 그는 35년간 대구에 살다 서울로 이주했다. 대구 연작의 백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골적이고 다채로운’ 사투리의 구사이다. 제대로 된 방언이 그 미학적 완성도를 한껏 높여 소월, 영랑, 백석 등으로 이어지는 우리 현대시사의 방언 시 계보를 잇고 있다. 백석의 시가 그렇듯 한국인의 원초적인 고향 개념을 환기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그리고 시에서의 대구사투리와 풍물은 단순한 방언과 풍물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이 빼곡 들어앉아있어 단박에 오래된 벗과 가족을 만난 듯 감흥을 안긴다.
시인은 대구의 어느 문학행사에 참석했다가 ‘대구’에 대한 시를 쓰면 좋겠다는 김선굉 시인의 권유를 받은 지 10여년 만에 그동안 문인수 시인의 채근이 큰 힘이 되어 이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구의 봄은 목련이나 개나리 같은 꽃나무뿐 아니라 겨우내 땅 속에 움츠려 있다가 고개를 내민 연한 잎과 풋풋한 향의 봄나물에서도 시작된다. 인근지역에서 갖가지 푸성귀가 다 올라와 집산된 칠성시장은 그래서 봄이 제일 먼저 찾아와 봄이 난만한 곳이다. 이름만 들어도 새삼 반가운 곳에서 생산된 나물들을 바가지에 ‘한테’ 넣고 고추장에 쓱쓱 비벼먹었으면 좋겠다. 고향의 봄이 한입 가득 들어오겠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