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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시 best 10>-새의 행로/복효근
테오리아2
2016. 1. 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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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시 best 10>
새의 행로/복효근
땅에서 태어났으나 어중간한 허공에 집을 짓고
하늘을 사랑하느라
땅을 돌보지 못했으므로 늘 풍찬노숙이었지
이제 하늘의 근원인 땅속 일이 궁금했을까
상추쌈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뒤꼍에 갔다가 죽은 새를 보았다
새도 죽는구나
죽어 땅으로 돌아오는구나
천국까지 내왕하는듯한 자유 부러웠지
불쌍한 생각이 들어, 불쌍하다니 겨우 땅 위를 기어댕기는 주제에,
새를 묻어주려 땅을 팠다
반쯤 감긴 새의 눈엔 어느새 파리 몇 마리 날아들고
흩어진 깃털 사이에는 민들레 씨앗이 달라붙어있었다
몸을 바꾸고 있었다
새는 제가 죽는 줄도 모르고
살아있는 새들은 죽을 줄도 모르고 노래하며 날고 있다
세상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일은 내일 또 내일의 해가 뜰 것이다
내가 먹은 상추는 몇 만 년 전 어느 새의 날개깃이었을까
민들레는 새가 되어 뿌리 내리고
파리는 새가 되어 꽃 필 것이다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는데 나만 습관적으로 불편하다
죽은 새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두려워, 혹은 학습된 슬픔 때문에 서둘러 나는 새를 묻었지만
단언컨대 나는 쓸데없이 이들의 역사에 간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 상관없이 6월이다 곧 여름이 올 것이다
출처 : 시인의 형님
글쓴이 : 시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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