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곰보빵
곰보빵
<2012년 보훈문예 대전 수필 우수상/이상렬>
삶의 우연이 필연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우리네 세상 속에서 실낱같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만나게 될 사람, 영혼의 보석 같은 사람이 내 인생에 개입했다는 것은 신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물마다 얽힌 사연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 내게 빵 하나를 건넨다. 곰보빵이다. 쉬이 베물지 못하고 한참 동안 바라만 본다. 옛 기억을 아무리 잊으려 해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허공으로 솟구치는 먼지 구름처럼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기억의 돋보기 속에만 있던 낡은 자동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또아리 언덕을 막 지나오듯, 시간의 저 편에 묻어두었던 희뿌연 추억 하나가 시나브로 다가온다.
지독히 추웠던 어느 해 겨울, 나는 강원도 어느 살풍경한 신병훈련소에 입소를 했다. 뱃속은 허기졌고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신병훈련 1주차가 지날 무렵, 진우를 만났다. 진우, 기억보다 더 오래된 세월 속에 그가 있었다. 고향의 한 동네에 살았지만 딱히 그에 대해서 기억해 낼만한 것이 없는 것을 보면 그와의 얽힌 사연이나 속 깊은 이야기 한 자락이 없는 듯하다. 확인 할 수 없는 아련한 기억 속이지만, 진우는 또래보다 작고 병약한 외톨박이였다. 콧잔등에는 늘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었고, 이마에는 여드름이 볼긋볼긋 돋아나 있었다. 이것이 진우에 대한 내 기억의 전부다.
잔뜩 겁에 질린 내 앞에 그는 늠름한 고참병으로 나타난 것이다. 체구는 크지 않았지만 야무진 골격에 번뜩이는 눈초리를 가진 모습 속에 그 옛날 왜소했던 진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진우는 훈련소의 취사담당 이등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두려움으로 움츠려있는 훈련소에서 이등병 연줄이 어딘가. 먼저 자대배치를 받은 진우가 나에게는 태산처럼 든든한 존재로 느껴졌다.
저물녘에 물든 황혼은 삭막한 훈련소에서도 아름다웠다. 진우는 식기에서 잔반을 털고 있는 나를 불렀다. 엄지손가락을 펼쳐 취사장 뒤로 오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부스럭거리며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곰보빵이었다. 신병 훈련소에서 밥 이외에 다른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고참병으로 대해야 할지, 친구로 대해야 할지 몰라 말을 놓는 둥 마는 둥 말끝을 흐렸다.
“이거 어디서 먹어~요?”
그의 표정에 비장함마저 감돈다.
“화장실!”
짧은 한 마디를 남기고 취사장 안으로 사라졌다. 그 냉랭함마저 멋져 보였다. 훈련병 신분에서 혼자 숨어 먹기엔 화장실이 최적의 장소란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 훈련소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곳은 화장실이었다. 모두가 자는 밤을 노렸다. 싸늘한 냉기가 팔뚝 위로 느껴졌던 외딴 화장실, 소리라도 새어나갈 새라 손에 땀을 쥔 채 빵 봉지를 뜯었다. 가슴에 품고 품어 짓눌려 있었다. 빵은 뭉개져도 빵이다. 코끝으로 전해지는 고소함은 재래식 화장실의 곰삭아 구린 냄새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숨을 죽이고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때 그 순간의 맛과 느낌을 이 지면에다 담아낼 어휘의 빈약함이 섧다.
그 후로 진우는 이틀이 멀다하고 곰보빵을 건네주었다. 어미 새가 바지런히 먹잇감을 건네주면 날름날름 받아먹는 둥지 안의 새끼 새처럼, 왜 내게 이런 일방적인 호의를 베풀까 단 한 번도 묻지도 생각하지 않은 채, 진우가 주는 곰보빵을 넙죽넙죽 낚아채듯 받아만 먹었다. 덕분에 혹독한 훈련기간 동안 내 볼 살은 토실토실 돋아 올랐다.
훈련을 마치고 나는 철책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그렇게 진우와 헤어졌다. 그 후로 진우는 그 옛날의 외톨박이처럼, 내 값싼 관심의 세계에도, 고마움의 울타리 속에도 들지 못한 채 내 기억의 커턴 너머에 잊힌 존재가 되고 말았다. 가지에서 한 번 날아간 새가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진우를 망각의 무덤 속으로 묻어버렸다.
봄꽃과 진눈깨비의 나날들이 몇 번 지나간 뒤, 군 생활을 마쳤다. 제대를 하고 고향 땅에 발을 딛는 순간, 흘러간 풍문처럼 아득하게 되살아나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진우다. 그제야 진우의 존재가 생각난 것이다. 죄 용서를 비는 제사장의 마음이라도 생긴 걸까. 맨 먼저 진우의 고향집을 찾았다. 그를 놀래주려고 곰보빵을 한 아름 샀다. 어떻게 변했을까. 맨 먼저 무슨 말을 꺼낼까. 곰보빵이 들려있는 진우의 착한 손을 떠올리며 대문을 열었다. 벅차오르는 마음에 힘껏 진우를 불렀다.
“진우야~ 진우야~”
평상위에 넋을 놓고 앉아 있던 진우의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못내 입을 열었다.
“진우, 죽었어. 군대서”
이 짧은 한 마디를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남긴 비보는 품에 안은 곰보빵과 함께 발밑으로 뚝뚝 힘없이 떨어졌다.
진우는 군 훈련 중에 뜻하지 않는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되짚어 보니, 본인도 이등병 신분으로 곰보빵을 남에게 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터인데, 이틀 꼴로 한 번씩 비밀한 행사를 거행했다는 것을 생각하니, 땅을 드러낸 호수처럼 미어지는 마음 바닥에 죄책감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훈련소의 밤을 설레게 했던 진우, 낯선 곳에 적응 못해 쩔쩔매는 나를 곰보빵으로 달래주었던 친구, 군대에서 처음 만났을 때 ‘진우’ 라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해서 기억해 내지 못했던 그 이름, 그는 나의 어릴 적 행동을 다 기억하고 있었지만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에게 살갑게 대해준 기억이 없었다는 미안함은 칼날 같은 아픔으로 다가왔다.
집 떠난 나그네에게는 고향을 향해 열어놓은 창으로 솔바람만 불어와도 고향이 그리운 법이다. 먼 타향 훈련소에서 만난 친구 진우는 나에게는 고향이었다. 그가 내게 열어준 넓은 품을 되짚어 볼 때, 나도 내 인생의 푯대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정확히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론 세상이 삭막하고 팍팍하게 느껴질수록, 이쑤시개 하나 들어갈 틈바구니조차 없이 빡빡하기만 한 현실에 부딪혀 가슴이 답답해질 때, 오직 더 빠르게, 더 많이 움켜만 쥐기 위해서 전쟁을 불사하는 위태위태한 세상을 맞이할 때, 그가 내게 보여준 바다보다 깊은 속을 헤아려 본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받아주듯, 살벌하고 여백 없는 세상에서 고향 같은 품으로 품어주라고, 사사로움에 얽혀 서로 상처만 주고받는, 그래서 꿰맨 자리투성이인 세상에서 오지랖 넓은 가슴으로 살라고 말한다.
곰보빵 하나라도 우러나는 가슴으로 아깝지 않게 내어줘 본이가 그것이 낭비임이 분명하지만 오히려 ‘거룩한 낭비’ 로 여기고 자신을 비우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진우처럼 넉넉하고 곰보빵처럼 풍성한 가슴에서 나오는 것, 곧 거룩한 낭비가 아닐까.
올해도 현충일이 지났다. 이맘때가 되면 진우가 사무치게 그립다. 강원 설악의 한 자락에 묽은 어둠이 내리는 날, 산그늘이 내려앉은 취사장 뒤편에 몰래 숨어든 한 명의 이등병이 한 명의 훈련병에게 가난한 자비를 베푸는 이 장면은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바위를 뚫어새긴 글씨처럼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지상에서 소멸하는 모든 숭고한 풍경가운데 이보다 더 뭉클한 장면이 또 있을까. 그 순간의 그리움은 일생 몫의 그리움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넋두리라도 하는 것은 새벽이슬 같은 청춘의 봄을 나라에 바쳤던 이 땅의 수많은 진우들, 그 숭고한 흔적이라도 기리고 싶어서다.
손에든 빵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날 이후로 하나를 다 먹어본 적이 없다. 큰 숨 한 번 쉬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목구멍에서 넘어가지 않는다. 진우는 그렇게 평생을 내 안에서 곰보빵으로 산다. 덕지덕지 진한 그리움으로.
펄럭이는 6월의 태극기 위에 진우가 아른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