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에 대하여]...........마광수
[수필에 대하여]...........마광수
수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솔직성' 이다. 수필은 상투적 교훈이 나 센티멘털리즘 을 배격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수필은 대개가 다 교훈성과 감상성에 머물러 있었다. 알맹이 없는 도 덕만을 부르짖는다든가, '촛불' '고향' '어머니' 등을 단골소재로 삼아 스스로의 진짜 속마음을 감추려고만 하였다.
나는 모든 글쓰기의 기본 심리가 '노출증(exibitionism)' 에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솔직하게 발가벗기' 가 글쓰기의 근본 동인(動因)이요, 또한 '좋은 글'의 첫째 요건이라고 보는 것이다. '솔직하게 발가벗기'는 또한 '솔직한 배설' 과도 연관되는데, 억압된 감정의 찌꺼기들 을 문학을 빙자하여 배설해내는 행위가 바로 글쓰기 행위라고 믿기 때문이다.
'발가벗기'나 '배설' 에는 어떤 목적이나 수식이 있을 수 없다. 똥을 눌 때 우리는 이 똥 이 비료로 쓰일까, 그냥 버려질까 걱정하지 않는다. 또한 똥을 좀 더 멋진 모양으로 배설 해내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발가벗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원하게 벗어제치는 게 중요하 지 '어떻게' 벗느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문필가를 지망하는 어떤 30대 여성과 꽤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편지 의 내용이나 문장이 하도 좋기에 나는 글재주가 있다고 계속 칭찬해 주었다. 그래서 그녀 는 글쓰기 모임에도 나가고 어느 수필 동인지에도 참가하여 수필을 발표하게도 되었다. 그런데 활자화된 수필을 읽어보니 나로서는 '영 아니올시다' 였다. 그녀는 빤한 거짓말 (도덕적 설교위주의) 을 늘어놓고 있었고 미문(美文)을 만 들어보려고 무진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편지로 그녀에게 한바탕 야단을 쳐주고나서, 도대체 내게 보낸 편지에 썼던 그 진솔한 '고백' 들은 다 어디로 가고 공허한 설교나 '남 걱정'만 늘어놓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에는 뭐든지 툭 털어놔도 비밀이 안 새나갈 것 같아 안심하고 써갈 겼지만, 일단 활자로 발표되는 글에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혹시 남편이나 친구들이 보 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돼서요."
이런 식의 태도로 수필을 쓰는 사람이 우리나라엔 상당히 많으리라 생각 된다. 글을 쓸 때는 무조건 뻔뻔스러워야 한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려고 들면 정말 쓸 게 아무 것도 없 다. 또 고상한 미문(美文)만을 쓰려고 들면 아무 것도 쓰지 못한다. 특히 허구적 사실이 아 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수필의 경우에는 더욱 솔직한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테면 성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성은 아름다운 것이다' 라고 쓴다면 이는 위선 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내심 증오하고 있는 사람이 '효 도' 의 가치를 역설한다면 이 또한 위선이다. 수필쓰기란 '위선과의 싸움' 에 다름아니다. 우리는 수필을 통해 스스로의 학식을 자랑한 다거나 도덕성을 위장하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수필은 또한 '나르시즘'과도 관계가 있다. 모든 글쓰기는 사실 '명예욕' 과 관련된 것이 지만, 그래도 수필은 가장 진솔한 '자기도취' 인 것이다. 다시말해서 남보라고 쓰는 글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 쓰는 글이 수필이라는 말이 다. 말하자면 성적 자위행위와 가장 유사한 글이 바로 수필이다. '일기'가 수필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남보라고 벗는 '스트립쇼' 는 수필이 아니다. 혼자서 벗으며 웃고 낄낄댈수 있는 것이 수필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 수필의 이중성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혼자서 하는 배설행위를 남보라고 활 자화하는 것이 바로 '수필의 발표행위' 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이중성이 위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당한 노출' 은 차라리 상업 주의적 외도를 내포하는 것이 낫다.
요즘세상에 상품화되지 않는게 어디 있는가. 문학의 상품화를 겉으로 경멸하는 체 하면서 사실상 상품화를 그리워하는(다시 말해서 책 이 많이 팔리고 읽히기를 기대하는) 심리야말로 진짜 위선이다. 요즘 전문적 문인이 아닌 아마추어 문인들(주로 한 방면에서 성공한 이들) 의 '자전적 수 필집'이 잘 팔리는 까닭은 독자들의 '훔쳐보기(盜視症, 또는 觀淫症)'욕구를 만족시켜주 기 때문이고, 그런 책들이 대개 문인이 쓴 수필 보다 진솔한 고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