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사막여우와 전갈 / 이언주

테오리아2 2022. 4. 18. 18:11
728x90

 

 

 

동영상 채널에서 사막여우와 전갈 사이에 결투가 벌어졌다.

큰 귀를 쫑긋 세운 귀여운 페넥과 악명 높은 전갈이 싸우니 아이들은 당연히 사막여우 편이다. 궁지에 몰린 전갈이 여우를 피해 달아났다. 구덩이 파기 선수인 여우는 모래를 파헤쳐 숨어 있는 전갈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전갈은 사막여우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다. 사막여우는 아무리 강한 전갈의 독이라도 스스로 해독하는 능력이 있다.

전갈은 갑자기 닥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아났지만, 여우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여우는 전갈 꼬리에 있는 독침을 떼어냈다. 꼬리를 새우고 저항하려던 전갈이 모래 위에 무방비 상태로 놓이고 말았다.

사막여우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여우는 살아있는 전갈의 꼬리부터 즐겼다. 몸이 뜯겨 씹히는 동안에도 전갈은 죽음에서 달아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앞으로 나아갔다. 여우는 전갈의 머리와 집게발까지 맛있게 먹고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사막여우를 응원하던 작은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물었다.

엄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세요?”

느닷없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할지 난감했다. 내 표정을 살피던 아이는 그냥 궁금해서라고 말꼬리를 돌렸다.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지나 않았는지, 친구들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걱정이 됐다.

전갈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이에게 물었다.

여우는 먹이 사냥을 할 뿐이었지만, 발버둥 치는 전갈을 보는 일은 몸서리치게 하는 일이었다. 몸통의 반이 잘려나간 전갈이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그 순간 전갈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공포와 세상의 끝이라는 절망을 느끼지 않았을까.

존재의 소멸이라는 말 속에는 자연이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사람들은 몰락을 예견하면서도 살아간다. 몰락은 파국이 아니라 윤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이별을 떠올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사를 하듯 죽음이 이곳에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되돌릴 방법이 없다. 생을 놓아버린 순간 개체의 존재는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내일은 오로지 존재하는 자들의 하루일 뿐.

무로 돌아간다는 말을 아이에게 쉽게 설명할 수가 없다. 잘못 받아들여 삶을 가볍게 여기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살면서 겪는 어떤 불행보다도 죽음에 닿는 과정이 더 무섭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각박해지는 사회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전갈이 여우를 만난 것은 운이 나빠 사고가 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위험한 곳으로 다니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