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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여행길-고윤자

테오리아2 2013. 1. 18.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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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여행길

고윤자

병원에 근무하면서 가끔씩 경험하는 일이지만, 오늘은 세찬 빗줄기 사이를 뚫고 들려오는 소리가 더 절절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울부짖음은 울음소리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피 빛으로 젖어있다.

또 누가 죽어 나가나 보다. 복도에 엎드려 땅을 치는 한 남자와 이미 숨이 끊어진 아들을 흔들어 보며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이 어머니의 헛손질이 가엾고 막막하다. 순간 고압전류 같은 차디찬 전율이 내 몸을 흘러 내려간다. 같은 범죄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경험처럼 감정의 차입이 익숙하고 낯이 익다.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운명하신지 서너 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벌써 사체를 수습해서인지 교통사고로 인한 고통스런 흔적과 사건의 처절함을 증명해 줄 핏자국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창백한 피부 우뚝 솟은 코가 평소보다도 더 날카로워 보였고, 살아 있을 때 당신께서 보여줬던 찬란한 카리스마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울음은 여유로운 사람의 기나긴 노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슬픔은 차곡차곡 내 숨을 닫아 버리더니 짧은 순간 나를 질식시키며 덮쳐 버렸다. 눈앞이 흐려오고 나를 지탱해 주고 있던 질긴 정신력은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채 식지도 못한 아버지의 몸이 냉동실에 들어갔다. 다리가 달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힘이 풀리고 온 몸에는 무섭고 차가운 아버지의 영혼이 들어와 날 꼼짝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동작을 거부당한 채 내 몸은 처음부터 움직임 자체를 모르는 물체처럼 안으로도 밖으로도 옴짝 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무서울까. 이 무서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내가 그렇게 사랑하던 아버지고 돌아가신 당신의 가장 아끼던 딸인 내가 단지 죽음이란 선고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다가가지도 머무르지도 못하는 관계가 설정되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말 한마디 못하고 미련조차 남겨둘 사이 없이 냉정하게 가버리면 당신의 자리를 메우고 빈자리를 서서히 채워가는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란 말인가. 무책임하고 제 멋 대로인 게 살아있을 때나 돌아가실 때나 같은 모습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아끼던 골프채도, 영화배우처럼 사들였던 옷과 넥타이, 와이셔츠... 그리고 끔찍이도 아끼던 당신의 네 아들조차도 모두 놓아둔 채, 심지어 동전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황망히 가버렸다.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어 표창을 받고 TV에 모습을 나타내며 자랑스러워하던 때도 있었다. 자손들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 주려고 세상과 타협하며 부끄러워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없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바로 없는 것이다. 자연에서 왔으므로, 아무런 공해 없이 벌거벗은 채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은 으레 죽는 것이다. 어차피 예정되어 있고 그 순서대로 냉정하게 진행되어 가는 것일 따름이다. 방금 차디찬 흙속에, 우리도 아버지도 전혀 가보지도 못한 생소한 그 곳에 아버지를 눕혀 놓고 돌아서 왔건만, 방을 들어서자 안락의자에 앉은앞 모습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계신 뒷모습도 보였다. 육신을 떨쳐 버린 줄 모르는 영혼은 우리들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었다.

말 한마디 못하고 떠난 외로운 영혼의 착(着)이다.

몇 천 번의 윤회를 통해 서로 그리운 사람끼리 만나질 수 있을까. 갑자기 집에 들어오는 벌레 한 마리, 새소리 하나도 놓치지 못할 정도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소중스러워진다.

빗줄기 사이로 들려오던 여인의 비명소리가 어느 정도 가늘어 지고 이젠 흐느끼는 소리만 간간히 들려온다. 흐느끼는 울음소리 사이로 수(壽)를 다하지 못하고 떠나야만 하는 영혼들의 무리가 보인다. 끊어질듯 흐느끼는 여인의 울음소리와 함께 죽음이라는 커다란 ‘불랙홀’ 속으로 같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나를 느낀다.

긴 여행 이었나, 짧은 착각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