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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있는 낙엽-고윤자

테오리아2 2013. 1. 18.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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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 있는 낙엽 <고윤자>



나무는 살아 온 젊은 날을 사랑한다. 작은 키지만 부끄럽지 않았고 긍지를 가지고 동산을 지켜왔다. 아무리 쉬운 길이 있어도 반듯이 가는 길이 아니면 눈길을 주지 않았다. 키를 넘기는 다른 나무의 명예를 부러워 한 적은 있지만, 자기 것이 아닌 곳간에서 물건을 내려 한 적은 없었다.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그 밭에서 추수하는 농부를 닮으려 했다. 개미나 벌처럼 자신의 땀으로 자신의 성(城)을 이룩하며 살고 싶었다.

내 박힌 곳밖에 모르는 협소함과 동산 밖을 모르는 어리숙함은 인정한다.
그래도 나대로의 삶을 고집스레 지켜왔다.
그런대로 정확한 나이테를 그리며 걸어왔다고 자부한다.
그것이 평생을 신주단지처럼 끌어안고 살아 올 만큼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도 좋은 것이었을까. 단지 오늘에 이르도록 깨어지지 않아서 지켜질 수밖에 없었지 않았을까 .
이런 소박함이 허술함으로 비쳐졌을지도 모른다. 잡초들이 무모한 욕심을 지핀다. 고요한 동산에 때 아닌 들짐승도 찾아든다. 나무는 이런 일이 처음이어서 숨을 죽인다. 풀과 나무들이 떤다. 새들조차 날개를 퍼득이며 날아간다.

뿌리는 땅 속에서 물을 빨아올려 줄기와 나뭇잎으로 보낸다. 나뭇잎은 햇빛을 받아 영양분을 만들어 뿌리와 열매를 맺는다. 뿌리와 나뭇잎은 별다른 대화가 없다. 물과 광합성이 오가는 통로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뿌리는 나뭇잎의 갈증을 자각한다. 나뭇잎은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뿌리의 비명을 들을 수 있다. 아이들과 나는 무선이다. 서로 살고 있는 거리도 가깝지 않다. 그래도 부모는 줄 없는 줄로 끊임없이 자식의 소리를 듣는다. 부모와 자식은 때로는 정전이 되어 작동을 멈춘 통신 기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전기가 흐르지 않아도 아이들의 고통은 부모에게로 그대로 흘러들어 온다. 가슴을 태우게 만들고 또 깊은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자식을 보살피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떤 심리적 동기에서 출발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자식의 불행을 보면 그 자신이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고통을 줄이고 싶은 이기적 동기에서 자식을 돌보게 된다고 주장한다. 자식과 부모와의 연결은 참으로 놀랍다. 어떤 장치가 있어 부모 자식 사이는 같은 크기의 전압과 동일한 세기의 전류로 흐르게 되는 것일까. 여러 겹으로 장치된 놀라운 통신망인 자식과의 연결고리는 추우면 몸이 떨리고 놀라면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슬프면 눈물이 나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작동된다. 여름엔 빈 집을 가득 채우고 겨울을 위해 마음을 비우고 떠나는 낙엽이 그러하듯이.

아이들은 내가 마을을 지키는 뒷동산의 바위이기를 바란다. 시골 마을의 느티나무처럼 그들 옆에 버티고 있기를 기대한다. 나는 그런 것들이 되지 못했다. 그저 나뭇잎에 불과했다. 그들은 싱싱하고 고운 빛이었을 때의 나만을 기억한다. 그 때는 나무가 나를 굳세게 붙잡아 주었을 때였다. 나무에 매달려 있기만 하면 되었고, 바라는 만큼 자라 주기만 하면 되었다. 무엇을 해 주기를 기대하지만 나는 손발이 묶인 것처럼 부동(不動)이다. 갈증이 나고 목이 타는 듯하다. 매달려 있는 것조차 힘겹다.

내 안에 언제 도적이 들었는가. 그나마 버티고 있던 삶에 대한 의욕을 집진기로 빨아내 버린 것 같다. 추위의 공격을 방어해야 할 몇 가지의 보온 기구마저도 남겨 두지 않았다. 바람의 공격을 빗겨가야 할 낮은 턱의 벽조차 무너진 것 같다.

낙엽이 진다. 푸르고 싱싱하던 잎이 앙상한 갈색으로 말라버린다. 베르누이의 법칙은 떨어지는 낙엽을 춤추게 만든다. 마지막 향연이다. 아무리 긁어 모아도 내 희망과 꿈은 북풍이 싸늘한 망각의 어둠 속으로 달아나 버린다. 낙엽은 겨울을 나기 위해 떨구어 버린 나뭇잎의 시신(屍身)이다. 추위에 굴복하고 바람에 흰 기를 흔들며 대열에서 이탈한 낙오병이다. 수분도 공급받지 못하고 더 이상 동화작용도 일으키지 못하는 이름뿐인 잎사귀이다. 비를 맞아 보도블록 위에 옴짝달싹 못하고 달라붙어 있는 빈 껍데기이다.

이제 나는 벌거벗은 채 도로 위에 누워 있다. 내 몸을 밟고 사람들이 지나간다. 사람들은 공격을 받을 때 더 삶의 의욕이 솟아난다고 한다. 나는 누워 있다. 누워있는 낙엽은 맞닥뜨린 고통을 기억하기보다는 차라리 외면하고 싶다.

거미줄처럼 이어져 내려가는 우주공간의 인연의 끈을 생각한다. 자식은 이 우주공간에서 존재의 이유를 주고 나를 잇게 해주어 나의 목숨을 연장시켜 주는 소중한 인연이다. 더없이 외로운 나와 당신들을 혼자만의 인생으로 끝나지 않게 만드신 절대자에게 감사한다.
낙엽은 자기를 낳아준 나무를 잊지 않는다. 그를 태어나게 해주고 생명을 연장해 준 땅을 온 몸으로 감싼다. 땅과 뿌리 위를 그 몸으로 포근하게 덮어 준다. 촛불이 자기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고 햇빛이 자기의 전부를 태워 대지를 키우듯이.

그 몸이 썩어 자식들의 성장을 돕는 영양분이 될 수 있기를 낙엽은 바란다. 그의 희생으로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음을 확신하면서.

나는 다음 세대가 사시사철 푸르고 강인한 침엽수이기를 바란다. 겨울을 견디고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철나무이기를 바란다.

되돌아보면 찰나 같은 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