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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님, 너님

테오리아2 2020. 7. 2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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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님, 너님

김근혜

 

   풍선껌 맛에 빠져서 배꽃이 핀다. 스칠 땐 인연이고 스미니 연인이 된다. 눈이 맞아 공약수 하나에도 세상이 멎는다. 너님을 따라나선 인생길이 낯설지만, 안내인이 없어도 든든하다. 봄의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은 평온하다. 애써 세상에 대한 예방접종은 하지 않아도 두렵지 않다. 사랑도 틀니 같다. 자리 잡을 때까지는 흔들리지만 너님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되는 날들이다. 무수히 부딪히고 깨져도 멥쌀 같은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달달하던 라떼 향이 날아간다. 불꽃 같던 사랑도 서서히 마르고 둘만의 가슴 뛰던 날들이 과거 속에 잠든다. 너님의 관심과 온기가 빠지고 수분이 마르면서 파스 붙이는 날이 많아진다. 나님의 깊고 부드럽던 소리가 거칠어진다. 울퉁불퉁한 소리만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나님의 서술형이든 대화가 단답형이 된다. 단절된 언어는 고장 난 전화기처럼 뚜뚜 거리며 바람 소리를 낸다. , , , 말줄임표로 아침을 맞고 네모, 네모, 빠짐표로 잠자리에 든다.

 

   너님은 빨간 펜으로 밑줄을 긋고 나님의 단점에 의미를 부여한다. 아마도 가시가 되려고 작정했나 보다. 나님도 뒤지지 않으려고 보이지 않는 마음 거리까지 재고 주석을 단다. 아내의 무게, 가장의 무게 위에 삶의 짐 하나가 더 가중된다. 나님은 나님대로 너님은 너님대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편곡하지 못한 삶의 그림자가 고독하다. 고장 난 시계처럼 우두커니 서서 가던 길을 멈추고 사람냄새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 냄새를 언제 맡았는지 기억조차 없다. 순환소수처럼 쉼 없이 되풀이되는 저마다의 색깔론 전쟁으로 더부룩한 삶.

 

   작은 불씨가 보풀을 일으킨다. 말의 꽃은 같은 꽃이어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땐 가시가 된다. 봄과 겨울 사이에서 지루한 시간이 이어지고 익숙하던 박자가 불규칙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어둠에 호흡이 가파르고 그쪽에만 더하고 곱하기를 하다 보니 삶이 겨울보다 더 춥다. 서로의 신세가 내다 버린 대리석이다. 사랑에 눈먼 조각가는 의욕을 잃고 삶의 군더더기만 예술품인 듯 진열대에 서 있다.

 

   색감의 모두를 뺀 모노톤 같은 삶, 나님은 그레이, 너님은 블랙, 차이를 느낄 수 없는 것 같으면서도 차이가 나는 두 사람, 한 길로 같이 걷는다고 생각하는데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한 채의 집에는 선이 많다. 실선이 모자라서 문까지 만들고 때론 스스로 닫지 못해 넘어진다. 나님의 속마음도 모르고 너님은 중앙선을 긋는다. 그러다 헛기침 몇 번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슬며시 손을 잡는다. 마음은 희망 선과 절망 선을 하루에도 몇 번 넘나든다. 똑같은 하루가 무의미하게 반복된다. 삶이 탈선의 갈림길에서 방향을 잃고 위기를 맞기도 한다.

 

   머리가 반백이 될 즈음에야 세월의 반쪽 작품이 왜 망고했나를 고추해 본다. 주파수를 맞추지 못해서 불통하였던 시간이 줄 서서 다가온다. 왜곡과 굴절된 것들이다. 마음의 소리를 닫고 있어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 나님이 낸 상처가 너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너님이 아프면 나님도 아프다. 옥죈 시간, 몰아붙인 것들을 손아귀에서 슬그머니 풀어버린다.

 

   매일 자라던 눈과 귀가 느려진다. 걸림돌이라 여겼던 너님이 때론 디딤돌로 보인다. 사건이 일어나도 지각을 한다. 나이란 것이 박자를 따르지 못한다. 한참 지난 다음에야 고민하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망각에 이른다.

 

   소리의 매가 무서워서 자신의 인생마저도 누군가가 연주해주길 기다리진 않았을까. 나님은 오른쪽으로 돌아서 양과 합하고, 너님은 왼쪽으로 돌아서 음과 합하여 양음의 소리를 맞추어 간다면 서로의 몫을 다하지 않을까. 미움에 종이 한 장 덮어 볼까. 억지로라도 그렇게 하면 마음의 키가 자랄까. 마음이 열려야 악기가 소리 속으로 몸을 던질 수 있지 않은가.

 

   허물을 볼 때만큼은 지각생이면 얼마나 좋을까. 단점은 뺄셈, 장점엔 곱셈을 하면 사랑할 시간이 더 많아지리라. 미워한 시간이 삶에서 힘 빼는 방법을 알려준다. 인생은 그런 것 같다. 어떤 값을 치룬 후에야 알게 된다. 뻑뻑한 눈에 한 방울의 안약이 필요하듯 지친 삶에도 인공눈물이라는 완화제를 넣어야 할 때가 있다.

 

   지금’, ‘여기가 나님과 너님이 만들어 낸 삶의 무늬이며 자리이다. 너무 아파서 된 흉터, 빙하기 속에서도 실오라기 한 줄에 걸던 희망, 절규마저도 인생의 어울림이어서 삶이 된 작품들이다.

 

   삶은 흉내 내기다. 누군가의 삶을 베끼고 닮는다. 나님과 너님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소리를 낸다. 인생은 예습할 수 없는 삶이어서 결국엔 복사본으로 사는 것이다. 나님은 실투, 너님은 실축. 헛때리기도 하고 헛차기도 한다. 어찌 식물이 땅속에서 뿌리가 부러져도 새로 나오지 않겠는가. 나님과 너님의 삶도 분얼하면서 성숙해지는 것이리라.

 

   나님이 없으면 불안정한 자리, 너님이 있어야 메워지는 자리, 나님은 조율하고 너님은 도우며 삶의 소리를 완성해 가는 것이리라. 소리는 서로 제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다 할 때라야 맑고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