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노하우 ABC/김영신 (자유기고가
글쓰기 노하우 ABC/김영신 (자유기고가)
글쓰기는 어렵다. 남보다 글을 잘 쓴다는 사람들, 나아가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대문장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첫 문장이 쉽게 떠오르지 않으면 연필을 마구 깎아대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한 미국 작가는 글 쓰는 일에 견주면 "사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다.
문학작품의 산고(産苦)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학창시절 글짓기 시간은 지루하고 당혹스런 기억으로 남아 있기 일쑤다. '봄'이니, '낙엽'이니 '남북통일'이니 하는 천편일률의 주제들은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데, 쥐어짜듯 몇 줄 써놓고 아직 한참 남은 원고지의 공백에 막막해지던 심정 말이다. 그런데 사회로 나와도 곤혹스런 글쓰기와 영영 이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다 못해 자기 소개서나 업무상 필요한 보고서, 보도 자료 한두 장을 쓸 일이라도 생긴다. 자주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글쓰기는 더 까다롭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맞춤법과 문장은 제대로 됐는지, 의도한 바가 잘 담긴 글인지 도무지 자신이 없다. 요즘은 '자기 표현의 시대'다. 말도 잘해야 하지만, 글로써 자기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인가.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그 원칙들을 살피고, 분야별 글쓰기 요령도 점검해본다.
▶ 글을 잘 쓰려면 이렇게
⊙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
가장 흔히 나오는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으로는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조언이다. "감동적인 글을 읽어 보지 못한 사람은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없다."는 말도 있다. 시인 김수영은 일기에서 "피로써 책을 읽고 무기로써 쌓아두어야 한다."고 적었다. 작가 김원일 씨는 문학을 하게 된 동기의 첫째를 독서 체험으로 돌린다. "남의 글을 부지런히 읽다 보면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글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자비를 들여 수필집이나 자서전을 출판하기도 하고, 인터넷 사이트에는 수천 명의 사이버 칼럼니스트들이 활동 중이다. 구청 공무원이 소설을 쓴다거나 현직 순경이 자신의 경험담을 인터넷에 연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글쓰기에 대한 선망은 크면서도 그 밑거름이 되어줄 글 읽기에는 여간 소홀한 게 아니다. 한국 성인의 독서량은 한 해 평균 10권을 밑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한번쯤 자신이 얼마만큼 치열하게 책을 읽고 있는지 헤아려 볼 일이다.
⊙ 좋은 문장을 외운다
민음사 편집부장 장은수 씨는 "글쓰기를 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글을 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문장 교육만큼은 좋은 글을 외우는 주입식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조선시대 지식 엘리트의 평균 수준은 지금보다 높았다. 조선시대 서간문을 보면 고금의 전거를 넘나들며 유려하게 문장을 펼칠 뿐 아니라 논리 정연하기까지 하다. 이것은 당대의 교육방식에서 비롯된 결과다. 옛날 선비들이 어릴 때부터 달달 외우다시피 하며 배운 ≪천자문≫이나 ≪논어≫ ≪맹자≫ 등은 사실 시와 논설문의 전형 아닌가. ≪동문선≫도 고금의 대표적인 문장들을 모아 70여 가지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참고서다. 결국 선인들은 이런 문장들을 되풀이 익히고 외움으로써 '동서고금의 아름다운 문장이 핏속에 흐르게 한' 것이다." 모델이 될 만한 좋은 글을 많이 접해서 내면화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는 글쓴이의 독창적인 사고와 표현 체계는 물론 논리적이고 수사적인 글쓰기의 기본 요령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처음에는 재미있고 쉬운 글에서 시작해 점차 정도를 높여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 말하기와 글쓰기는 다르지 않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1741∼1793)가 지은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에는 선비의 예절을 이르면서 "언어는 소근거려도 안 되고, 지껄여도 안 된다. 또 산만하게 해도 안 되고, 지체해도 안 되며, 길게 끌어도 안 되고, 뚝뚝 끊어지게 해도 안 된다. 뿐만 아니라 힘없이 해도 안 되고, 성급하게 해도 또한 안 된다."고 적고 있다. 본디 이 구절은 말하기에 대한 것이지만, 글쓰기에 대한 원칙으로 바꾸어 되새겨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글을 잘 쓰는 한 방법은 말하듯 쉽게 쓰는 것이다. 자기가 쓴 글을 소리내어 읽어 보는 것도 좋은 확인 방법이다. 말하듯 쉽게 쓴 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가 홍명희의 ≪임꺽정≫이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얘기를 들려주듯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그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자연스런 문장의 한 표본으로 남아 있다.
⊙ 단문을 쓰는 훈련을 한다
글을 잘 써 보겠다며 수식어를 자꾸 집어넣다 보면 글이 길어지게 된다. 이것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글이 길어지면 잘못된 문장이 되기 쉽다. 특히 주어 술어의 호응이 엇갈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하다. 한 문장에는 한 가지 생각만 담기로 하는 것이다. "여자의 스커트와 연설은 길이가 짧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것은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렇다면 짧은 글쓰기 연습은 어떻게 할까. 미국에서 통용되는 아주 기술적인 교육법으로 단문을 반복하는 훈련이 있다. 이를테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는 동작을 3단계로 묘사한다고 하자. "동전을 넣는다―자판기 단추를 누른다―커피를 꺼낸다"가 된다. 이것을 4단계, 5단계, 10단계 하는 식으로 계속 늘려 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황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묘사하는 습관, 사고 훈련이 이뤄진다.
⊙ 글쓰기의 특징과 단점을 빨리 찾아내 고친다
문장도 각자 개성이 있는 것이므로 일률적으로 어떤 모범 답안만을 따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일반인들은 자기 글의 특징을 빨리 발견해 단점을 반성하고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단락의 첫 부분에 '그러나' '그런데' 등 접속어를 계속 써야 말이 이어지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대표적인 잘못된 습벽인데, 이런 것들은 얼른 찾아내 고쳐야 한다. 또 늘 문장이 길어진다면 짧고 간결하게 구사하는 문장도 간간이 집어넣고, 늘 짧게만 쓴다면 지속성과 유장한 흐름이 없으므로 복문을 쓴다든가 하는 식으로 의식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 짜임새 있고 자연스러운 글을 쓰도록 노력한다
서울대 권영민 교수는 "부분적으로 아무리 표현이 아름답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잘 쓴 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체를 훑어보아 짜임새가 있어야 한다."고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을 밝힌다. 이 짜임새란 단락의 구획이라든가 논의의 흐름 같은 여러 측면에 해당할 수 있다. 글이란 생각을 표현해 놓은 하나의 덩어리이므로, 짧은 글이건 긴 글이건 사고의 균형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가 지목하는 것은 얼마나 정확한 어휘를 사용하는가이다. 상황에 맞는 어휘를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다소 전문가적인 접근이며, 사실 일반인들은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읽힌다면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심오한 사상을 담았더라도 문장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면 잘 쓴 글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래 써온 자기 언어에 대해서는 누구나 어느 정도 직관을 가지고 있다. 좋지 않은 문장은 굳이 잘못된 점을 따져보지 않아도 단박에 부자연스런 느낌이 온다. 이런 부자연스런 느낌이 적은 것이 좋은 문장이다. 글에 변화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변화가 없다면 밋밋한 문장이 될 것이다.
⊙ 글에 개성을 살려라
글맛 좋기로 소문난 작가 이윤기 씨는 모든 글에 적어도 하나의 위트를 집어넣는다. 그의 글을 읽는 이들은 언제 어디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나 기대감을 갖고, 그런 덤을 만날 때마다 싱긋 웃음 짓는다. ≪관촌수필≫에서 보여준 이문구의 해학, 지적인 유머를 선보이는 성석제의 톡톡 튀는 문장도 때론 미소를, 때론 폭소를 자아내며 읽는 흥을 돋운다. 탁월한 문장가로 꼽히는 작가 이문열 씨는 논란이 많았던 소설 ≪선택≫에서 보듯, 예스런 의고체(擬古體) 문장을 잘도 구사한다. 방대한 한학 지식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 역시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훌륭한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산문집 ≪풍경과 상처≫ ≪자전거 기행≫ 등에서 김훈은 현기증 날 정도의 미문으로 읽는 이의 기를 질리게 한다. 이렇듯 글 잘 쓰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 나름의 개성이 글에서 묻어 나온다. 유명 작가 수준의 명문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인도 자신의 글에 자신만의 체취를 담아볼 일이다. 그 방법은 솔직하게, 열심히 쓰는 것이다. 따뜻한 성품이 우러나는 글, 정직한 글, 재치 있는 글, 시원시원한 글, 모두 매력적이고 좋은 글이다.
⊙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문장 교열 전문가가 드물다. 몇몇 출판사의 고참 편집자들도 대부분 기획과 편집, 행정 업무까지를 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필자들은 자기 글에 손대는 것을 마치 권위를 침범당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것이 제대로 된 좋은 글, 좋은 책이 나오지 않는 중요한 한 가지 이유가 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아무리 유명한 대학교수라도 책을 내기 전에는 출판사를 통해 철저한 전문 교열과 편집을 거친다. 전문가들은 문제점을 지적하며, 필요하다면 책 전체의 구성을 재조정하기도 한다. 표기법이나 어법상으로 완벽하면서도 저자의 개성을 살리는 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적어도 공식적으로 출간되는 글이라면 제도적으로 전문가의 손을 거칠 필요가 있다. 일반인들도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전문가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 잘잘못을 가리고 고치는 기회를 가진다면 좋을 것이다. 외국 대학에서는 자체적으로 학술문장센터가 있어 글쓰기 실력이 모자란 학생들이 잘못된 점을 교정하고 좋은 글을 쓰는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들에도 이런 체제의 도입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고도의 지식과 자격을 갖춘, 제대로 된 편집 교열자를 길러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 글쓰기에 관한 책을 참조한다
뉴욕타임스나 AP 등 해외 유명 언론사들은 독자적인 문체집(style book)을 펴내곤 한다. 이런 책들은 훌륭한 영어 문장 쓰기의 원칙과 사례들을 보여준다. 윌리엄 스트렁크(1869∼1946)가 쓰고 얼윈 브룩스 화이트가 개정한 ≪문체의 요소들(The Elements of Style)≫은 100여 쪽에 불과한 분량에다 1930년대에 출간된 옛날 책임에도 핵심을 찌르는 원칙과 좋은 문장으로 오늘날까지 글쓰기의 바이블로 통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대형 서점에 가 보면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꽤 많이 나와 있다. 대학 입학 시험에 논술이 포함된 이후 입시용으로 나온 책들까지 포함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책들은 맞춤법이나 문장론 전반을 다루기도 하고, 자기 소개서·이력서·논문·에세이처럼 상황에 따른 글쓰기 요령을 알려주기도 한다. 필요에 따라 이런 책들을 골라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런 책들 가운데 정작 읽기가 괴로운 책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딱딱하게 어휘나 문법적인 사실만을 나열한다거나, '실전…' '해법…' 식의 중고교생 참고서처럼 기술만 가르치는 책은 손이 안 가게 된다. 중견 작가 한승원 씨의 ≪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문학평론가 박동규 서울대교수의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등의 책은 비교적 읽는 맛도 있으면서 좋은 글쓰기의 이론과 실제를 풀어놓고 있다. 좀 더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글쓰기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태준의 ≪문장강화≫와 시인 박목월의 ≪문장의 기술≫을 찾아봐도 좋겠다. 이즈음의 젊은 필자로 주목받는 이는 고종석이다. ≪국어의 풍경들≫ ≪감염된 언어≫ 등은 직접적으로 글 잘 쓰기를 일러주는 책은 아니지만 말과 글쓰기에 대한 단상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일독해 볼 만하다.
▶ 스티븐 킹의 글쓰기 제안 “당신만의 ‘연장 상자’를 가져라”
미국의 인기 있는 공포 소설 작가 스티븐 킹(52)이 최근 글쓰기에 관한 조언을 담은 자전적인 에세이집 ≪글쓰기에 대하여(On Writing)≫를 펴냈다. 킹은 30권이 넘는 베스트셀러를 출간하고, 국내에도 개봉된 ≪캐리≫ ≪미저리≫ ≪쇼생크 탈출≫ 등 나오는 책마다 영화로 제작돼 할리우드의 간판 영화 원작자로도 꼽히는 인물. 그는 1999년에 집필한 이 책에서 작가 지망생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흥미로울만한 제안들을 내놓고 있다. 다음은 그 내용의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어휘의 사용이 중요하다.
글쓰기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길 원한다면, 자신만의 고유한 연장 상자(toolbox)를 구성해야 한다. 그 연장 상자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이 되는 것은 어휘다. 그러나 어휘란 많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문장에서 쓸데없는 어휘를 늘어놓는 것은 마치 애완견에게 이브닝 드레스를 입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써라.
단어를 선택할 때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쓴다는 원칙을 명심해야 한다. 주저하고 숙고하다 보면 처음 생각해냈던 것보다 더 못한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문법을 지킨다.
지나치게 문법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나쁜 문법은 나쁜 문장을 낳는다. 문법은 일반 교육을 마친 사람이라면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익히게 된다. 서점에 나가 책 한 권만 사서 읽어 보면 해결될 일이다.
―수동태 문장과 부사는 가급적 쓰지 않는다.
수동태 문장은 가능하면 피하는 게 좋다. 수동태 문장은 글쓴이의 주저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단문을 쓴다.
글 쓸 때는 독자를 꼬드겨야 한다. 말솜씨가 좋으면 유혹하기도 쉽듯, 말하기에 가까운 단문 문장을 써라. 그것이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주어와 술어로만 구성된 단문 구조는 완벽한 문장으로 문법의 기본이면서 매우 유용하다.
―단락을 잘 사용하라.
단락이란 글쓰기의 기본 단위이며, 응집이 시작되는 곳이고, 단어들이 단순한 단어 이상의 의미를 나타내는 무대다. 단락은 한 단어 길이에서 몇 페이지까지 계속되기도 하는 대단히 유연한 기구다. 기본적인 단락 구성― 주제 문장 뒤에 그를 뒷받침하고 기술하는 문장이 뒤따르는 것은 글 쓰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조직화하고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글쓰기를 잘 하려면 단락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 여기에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대단한 작품을 쓴다기보다는 단락 하나를 짓고, 어휘와 문법 지식, 기본적인 문체들을 쌓아가며 차근차근 다음 단계로 넘어가다 보면 언어의 집을 지을 수 있게 된다.
―즐겁게 써라.
대부분의 잘못된 글쓰기의 근저에는 두려움이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기쁨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라면, 그러한 공포감은 훨씬 누그러질 것이다.
―완벽한 구성보다는 흥미 있는 상황을 설정하라.
구성은 훌륭한 작가들이 맨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수단이지만, 얼간이 작가들은 이것을 맨 먼저 선택한다.
―많이 읽고 많이 써라.
만일 작가가 되고 싶다면, 다른 무엇보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게 중요하다. 내가 아는 한 이 두 가지에는 지름길이 없다. 나 역시 독서 속도가 느린 편이지만 1년에 70~80여 권의 책을 읽는다.
서두 ․제목 ․ 결미
■ 서 두
1. 첫 석 줄은 성패의 열쇠
첫 문장, 그것은 전체를 내비치는 부분이다. 아무리 유명한 문장가의 글이라도 첫 석 줄을 읽어 보곤 내동댕이친다. 첫 석 줄로써 ‘읽힐 문장’인가 ‘안 읽힐 문장’인가를 예리하게 판단한다. 성급한 독자들의 조급한 판단이 옳다 그르다 하기 전에 ‘읽힐 문장’으로의 문장 전략상으로도 유념해야 할 문장 작법의 하나다.
들머리에서 흥미와 주의를 일으켜 놓고, 중간에서 그 흥미와 주의를 지속적으로 유지케 하고, 마무리에서 운치롭고 인상적으로 마치게 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문장에 붙여지는 주의 사항이다.
2. 첫머리의 기법들
첫머리의 기법은 학자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읽힐 문장’의 첫머리는 재미, 호기심, 감명 중 그 한 가지는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1) “나는” 형 : 필자 자신이나 주인공을 내세우는 기법이다.
<보기>
▶나는 그믐달을 사랑한다. 그믐달은 너무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가 없고….
-나도향: <그믐달>
▶우리가 태어나 늙고 병들고 마지막으로 죽음의 문에 들어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
-이상헌: <죽음의 준비>
(2) 시처형 : 시간이나 장소로 시작하는 기법이다.
<보기>
▶“축하합니다.” 닥치는 사람마다 얼싸안고 축배를 올리고 싶은 석양.
-남정현: <인간 플래카드>
▶3년 전인가, 우리 연구원에서 한글을 해독한 40대 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정찬남: <한글도 못 배운 딸들>
(3) 해설형 : 제목의 뜻, 집필 동기, 말의 풀이 따위로 시작하는 기법이다
<보기>
▶글은 정확하고 명료하면서도 아름답고 매력 있는 것이어야 한다. 문장에 아름다움과 매력을 더하는 솜씨, 그것을 문장의 기교라고 한다.
-황경식 교수: <문장의 기교>
▶내 고향은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 단오절이면 봉산탈춤이 며칠이고 밤을 지새우는 곳.
-유현목: <나의 길>
(4) 본론형 : 다짜고짜 본론, 주제로 직행하는 첫머리다.
<보기>
▶아직도 그날의 함성이 귓가에 생생하다. 빙그레를 누르고 92프로 야구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한 것이 지난 14일. 이미 열흘이 지난 일이건만 지금도 그날의 함성을 떠올릴 때마다 숨이 가빠지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강병철: <나의 길>
▶분명히 못박아 두고자 한다. 사법적 처리와 정치적 보복은 동의어일 수 없다. 결단코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김중배 칼럼/ 동아일보
(5) 묘사형
<보기>
자연 형용사가 많이 끼이고, 수식구가 잦아진다. 시인, 소설가의 첫머리에 많다.
▶비명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을씨년스런 가랑비가 축축히 강물로 떨어지고, 구조대 헬기가 허망하게 숨져 있는 희생자들을…. -선우정: <기자수첩>
(6)회화형 : 본론형의 하나. 다만 그 형식이 회화로 시작되었다는 것뿐이다.
<보기>
▶엘리트 총각 사원이 아이 딸린 연상의 여인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가족과 친구들이 펄펄 뛰며 반대를 했다.
-이상헌 칼럼/ 세계일보
(7) 인용형 : 명구, 명언, 유명인의 말을 첫머리에 인용함으로써 들어가는 기법이다.
<보기>
▶“브일로 우제 차쏘브 데샤치 우체라”, 작가 이호철 씨는 91년 가을 모스크바대학의 한국어과 학생들 앞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임동헌 기자: <이 사람의 삶…>
(8)선형형 : 뼈대, 틀을 짜는 것을 말한다. 틀매김을 제시하고선 들어가는 기법이다.
<보기>
▶노후에 믿을 수 있는 것이 셋 - ‘늙은 아내, 늙은 개 한 마리, 그리고 예금통장’
-김소운: <맨발 벗은 개>
▶ABC란 몇 가지 뜻을 가진 단어다. 우선 미국의 3대 TV 네트워크의 하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방송위원회도 ABC다.
-신인섭 교수: <신문과 ABC>
(장재성, ≪문장표현사전≫)
■ 제 목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에 어떤 제목을 붙일까 하는 고민에 빠진다. 이런 고민은 글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창작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겪는 고민이다. 이 제목 붙이기는 쉬울 듯하면서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멋진 제목을 찾아 고심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무제(無題)’, 또는 ‘실제(失題)’로 하고 마는 경우도 허다하다.
멋진 제목이야 작가의 뛰어난 감각에서 나오는 것이겠지만, 꼭 멋진 제목이 아니더라도 제목을 붙이는 일반적인 여섯 가지의 방법이 있다.
첫째, 글의 소재를 제목으로 삼는 방법이다.
둘째, 글의 주제를 제목으로 하는 방법이다.
셋째, 작품의 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하는 방법이다.
넷째, 작품의 상징적 지시물을 제목으로 삼는 방법이다.
다섯째, 글 중의 어느 부분을 절취하여 제목으로 삼는 방법이다.
여섯째, 글의 내용을 아주 짧게 요약하는 방법이다.
멋진 제목을 달고 싶은 욕심에서 글의 내용과는 엉뚱한 제목을 붙이거나 과장된 제목을 붙이는 경우가 많이 있다. 비록 그 글이나 책이 많이 팔렸다고 하더라도, 이는 결국 읽은 사람에게 배신감을 안겨줄 것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글 쓰는 사람의 양심에 관한 문제이다.
■ 결 미
1. 끝이 좋으면 전체가 산다.
첫머리보다 중요한 게 이 끝맺음이다. 독자들의 머리엔 이 마지막 것만이 남기 때문이다. 읽은 다음에 손해본 듯한 마무리는 필자도 독자도 바라지 않는다. “읽은 수고가 헛되지 않았구나.”는 이점을 안기는 결말이었으면 함이 최소의 소망이겠다.
2. 마무리 문장의 조건
(1)짧아야
마무리 단락은 짧을수록 효과적이다. 일반적인 생활문에서 첫머리를 전체의 15%, 마무리를 10%로 잡으라 함은 그 때문이다. 압축의 압축, 생략의 생략.
(2)강해야
강한 표현이 되려면 문장을 입체화해야 한다. 입체는 평면의 반대다. 문제를 밖에서 바라보는 것(시점 변화), 딴 화제와 결부시키는 것(비교, 대조), 표현에 변화를 깃들이는 것(문체의 변화, 리듬화) 따위도 입체화의 한 방법이다.
(3)안정감 있어야
종결은 완결미, 완성미를 의미한다. 엉뚱한 화제로 돌리면서 끝맺는 것도 하나의 '여유'요 '새로움'이다. 딱딱한 내용을 앞에서 말했으면 그 뒤엔 반드시 풀어주어야 한다.
3. 마무리의 기법들
(1)고조형
사건의 해결이나 화제의 종말을 평면적으로만 말하지 않고, 새로운 파란을 일으키거나 독자의 감흥을 더 추어올리려는 맺음이다.
<보기>
보아주는 이 없어도 좋다. 오직 나의 서식할 한 줌의 흙과 철 따라 내리는 우로 있으면, 태양의 따뜻한 온기와, 밤이면 만천 성좌의 서정과 더불어 성장하면 그뿐! 어느 때고 안으로 안으로 다스려 오던 내 정열이 마침내 견딜 수 없는 날, 노래처럼 나도 꽃 한 송이 진홍 빛깔로 개화하였다가 낙화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영도: <잡초처럼>
(2)완결형
안정감을 목표로 완전히 할말을 다 하는 마무리다. 논설문에서 많이 쓰인다.
<보기>
그의 유서가 피로되었다. 그 유서에는, 4년 전에 XX도 XX고을에 살던, 그때 열두 살 났던 '영애'라는 처녀를 찾아서, 그 처녀가 그때 어떤 과객이 준 수정으로 만든 비둘기를 가지고 있거든, 자기의 유산 전부를 주어서 비둘기를 사서, 자기와 같이 묻어 달란 말이 있었다. 그리고 젊은이는 그때의 그 소녀가 아직껏 그 비둘기를 가지고 있을 것을 의심치 않고 믿었던 것이었다. 이리하여, 그의 주검은 수정 비둘기와 함께 무덤으로 갔다.
-김동인: <수정 비둘기>
(3)여정형
이미 말한 내용에서 약간 벗어나거나, 주변적인 것에 초점을 돌려 효과를 봄.
<보기>
시계가 여덟 시를 친 지 몇 분 뒤에, 무엇인지 깃대 위로 느릿느릿 기어오르는 것이 보이더니, 이윽고 산들바람결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것은 검정 깃발이었다. 드디어 '심판'은 끝났다. …(중략)… 말 없이 바라보고 있던 두 사람은, 마치 기도라도 올리는 양 땅 위에 쓰러져 한참 동안 꼼짝도 않고들 있었다. 검정 깃발은 말없이 바람결에 나부끼고만 있었다. 이윽고 기운을 가다듬은 두 사람은 일어서더니, 다시금 서로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
-토머스 하디: <테스>
(4)전환형
새로운 대상, 이질적인 내용의 제시로 여유와 참신을 노리는 마물리기다.
<보기>
나는 아직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산맥, 저 아랫자락에서 헤매고 있는 새끼 소설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눈길은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그 산꼭대기를 향해, 약한 고개를 추켜들게 한다. 소설가를 꿈꾸는 그대들이여, 당신의 삶의 열정으로 인생의 광맥에 곡괭이를 찍어 보라! 그나마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행위도 짐짓 사기에 지나지 않을지니.
-이경자: <이건 결코 쉽지 않다>
(5)재강조형
'요약형'이고 '재서형'이다. "반복은 강조를 의미한다" 는 배경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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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녀는 언어의 신을 잠 속이나 꿈속에서도 만나고자, 몽중 노력까지도 기울이는 것이니, 낮 동안의 처절한 각고는 또 어떻겠는가. 원고지 한 장을 쓰는 데 한 달도 걸리고 두 달도 걸리는 그 신성한 엄숙주의, 목숨을 건 혼신의 노력이 없이는 '신기'에 도달할 수도, 한 줄의 좋은 문장을 얻을 수도 없다는 지극한 겸허함이 그녀의 놀라운 문체를 만든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김승희: <문장 수업>
(6)인용형
유명 인사의 얘기, 명작의 시가, 자기의 시 따위를 인용하면서 마물리는 기법. 인용하는 작품의 암시성이나, 격언, 속담 등의 풍유가 넌지시 에둘러 정곡을 찌를 때는 더없는 효과를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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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야망을 잃는 것이다.” 피카소의 일생을 다룬 영화 <황소와 비둘기>의 주연을 맡았던 영화 배우 앤터니 퀸이 남긴 말이다.
-이광훈 칼럼: <50대, 그 쓸쓸한 그림자> /(장재성 : ≪문장표현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