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육탁 / 김희자

테오리아2 2022. 9. 2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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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비집고 빛줄기가 거실 바닥으로 든다겨울 날씨가  날씨 같다고 비웃었다가 된통 욕을 보고 있다세상천지가 꽁꽁 얼고 하늘과 땅의 길도 막혔다영하 20맹추위는 가난한 사람의 체감온도를 한층 추락시킨다냉혹한 바닥을 치고 나갈 탈출구는 어디쯤 있는지여자는 지금 미래로 나아가지도과거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갈림길에  있다바닥을 치는 여자의 육신처럼 거실 바닥에 뒹굴던 빛줄기가 파닥거린다새벽 어판장에서 파닥거리는 물고기육탁(肉鐸) 같다.

  화려해 보이는 도시의 군중 속에   하는 가난이 여기에도 있다. 더는  것이 없는 생의 바닥. 물질도 정신도 모두 바닥이다. 한파가 가슴 깊숙이 파고든  오래이니 심신이 꽁꽁 얼음장이다. 그런 여자에게도 봄날은 올까? 물질이 궁색해지니 호기심마저  가라앉았다. 표정 없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여자는 두문불출이다. 명자꽃처럼 홀로 붉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만사에 무심해져 동면에  동물처럼 이불 속에 파묻혀있거나 책과 연애를 하다가 출근 시간이 되면 꽃단장을 한다.

 

  처지가 그러하니 여자는 베란다 식물에도 냉정했다. 얼어 죽든 말든 그들의 존재에 무심했다. 무관심만큼 잔인한  없다더니 애지중지하던 식물들이 동사했다. 잎이 얼어 시커먼 군자란을 얼른 안으로 들이고, 벤자민 화분을 실내로 들이려고 하니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없는 식물까지 얼어붙게 하다니. 여자는 미안한 마음에 머플러를 가지고 나와 나무 위에 씌웠다.

 

 

  겨울 하늘이 시리도록 파랗다. 바닥에 살아도 꿈꾸는 하늘을 본다. 차디찬 바람이 설익은 여자를 흔든다. 혹독하게 날을 세우고  계절 앞에서 바닥을 치고 올라설 기를 동냥한다.  번의 잘못은 실수라고 인정할  있다지만  번의 잘못은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지? 실수라 용납하기는 정말이지 원통하다. 오늘도 늑골까지 파고드는 한기를 느끼며 파산 수업을 받으러 가야 한다. 회생을 위한 마지막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집을 나서야 한다. 침묵에서 침묵으로 시간은 이어지고  시간 위로 찬바람만 분다.

 

  어젯밤에도   들고 뒤척이는데 건넛방에서 휴대폰이 울었다.  홀로 울든 말든 외면해버렸다. 여자의 기분은 무시한  쇳소리는 무정하게 울어댔다. 내리 징징대는 휴대폰을 달래기라도 하듯 메시지를 열었다. 그였다. 여자의 기별 따윈 일언반구 대꾸도 없던 사람이 자기  말은 일방적으로 던져온다. 그는 사업을 시작한  이태도 되지 않아 파산선고를 했다. 개인회생이 마지막 길이라며 도움을 청했다. 변명을 잔뜩 늘어놓으며 구구절절  맺힌 사연을 보내왔다.

 

  여자는 달포 , 그에게 퍼부었던 언어가 떠올랐다. 차마 입에 담을  없는 . 참다 참다가 퍼부은 비수였다. 그는 언제나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괘씸하고 얄미웠다. 그러던 여자가 밤늦게  메시지를 보고 말을 잃었다. 슬픈 메시지는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흔들었다. 그는 날밤을 새워가며 애면글면 산다고 했다. 냉정해지고 싶지만 이도 저도 어찌할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서도 참고 견뎌야만 한다.

 

  불멸의 밤이 생각났다. 육신 보다 지쳐  바닥에 모로 누운 영혼이 떠올랐다. 힘껏 바닥을 치다 보니 여자의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홀로 생겨났다가 흔적 없이 사라진 길을  개나 그렸으며, 외로운 여자의 방으로 달빛이 숨죽이며 들어와 지친 다리를 주무르던 날이 얼마였던가? 에는 바람에도 마음 베이지 않으려고 무심했다. 쇠심 같은 인연의 끈도 끊고 싶었다. 때때로 먹물처럼 번지던 외로움…. 하나 여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용감하고 독해져야 했다. 울음을 삼키며 웃음으로 세상과 섞여야 했다. 샛별이  비비며 종을   꿈길인  일어나 살아있는 자신을 확인했다.

 

  바닥을 친다는 것은 생의 나락으로 추락한 상황. 여자가 꿈꾸던 삶이 모조리 무너져 내려 바닥에 닿은 지경을 말하는  아닌가. 멀쩡하던 회사가 어느 순간 몰락하거나, 튼튼하던 가정이 일순간 무너지고 건강하던 사람이 시한부를 선고받는 것처럼. 믿었던  나라의 지도자가 바닥에 내동댕이치듯  집안의 가장이 추락했으니 배우자인 여자는 어쩔  없이 파산 수업을 받아야 한다. 더는  것이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것이 생의 바닥이지만,  나라에 사는 것을 포기할  없듯이 여자는 무너진 가정을 지켜야만 한다.

 

  신기한 것은 허기질수록  간절해지는  생긴다는 사실이다. 침묵 뒤에 오는 성찰과 영감은 혼자 있는 시간에만 찾아오는 선물이나 진배없었다. 여자의 눈엔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다른 것에 매달리며 파닥거렸다. 속없이 굵어 버린 가난의 무게는 별것 아니라고. 자신을 지켜야 가정도 지켜진다는 소신이 섰다. 여자는 아니타 무로 자니의 글처럼 삶에 맞서 저항할 것이 아니라 삶과 함께 나아갈  가장 강한 존재가 된다.’ 스스로 토닥였다. 무너진, 바닥을 치는 자존감을 다시 일으켜 세울  있는 대안을 찾으며 기다렸다.

 

  바닥을 벗어날 회생 수업은 더디기만 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오로지 여자의 몫이었다.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 바닥을 치고 깊은 허무에 빠져 있어도 아무  없는 듯이 일터로 나갔다. 매일 () 열애하며 존재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그러자, 뿌리 깊은 상실감이 조금씩 채워져 갔다. 예기치 않은 시련이 닥쳐 바닥을  때마다 진통제 역할을 해준 것이 문장(文章)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순간에도 여자를 흔들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라고 일깨웠다. 남들은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는 문학이 지킴이가 되었다. 글쓰기가 업인 사람도 있고 취미인 사람도 많다. 하지만 여자에게 있어 글쓰기는 살기 위한 도구이며 은둔하기 위한 즐거운 감옥이다.

 

  내일모레면  한파도 물러나고 회생 판결이  것이다. 그날까지. 슬픔이 웃음이 되어 터져 나올 때까지 여자는 온몸으로 바닥을 쳐야 한다. 혹독하게 잃어버려 보았기에, 맨몸으로 바닥을 치면서 깨달았다. 생애에서 제일  힘은 바닥을   나온다는 것을…. 삶이란 살기 위해 온몸으로 바닥을 치는 생선만큼이나 고달픈 여정. 목탁을 치는 수행자들의 고행처럼 가시밭길이다. 하지만 여자는 다시 살아나리라. 육탁(肉鐸) 치는 힘으로 바닥에서 벗어나면 그보다 더한 추락은 없으리라. 바닥은 희망. 바닥이 없다면 하늘 또한 없을 테니까. *